[동물공화국] 태초의 혼란(5)
기사입력 1998년 02월 04일 15시 37분
바우가 한바탕 아파트를 뒤흔들자 가장 신바람이 난 것은 시저였다.
그동안 수적 열세에 밀려 외롭게 고군분투해야만 했던 시저는 바우의 기세에 이방인들이 찔끔하자 길길이 날뛰며 한풀이를 했다.
바우가 중장비로 큰 바위를 깨부숴 치우자 시저가 승용차로 신나게 달린 셈이었다.
그날밤 아파트는 바우에 이은 시저의 포효로 늦도록 시끄러웠다.
그러나 아프리카 출신의 킹과 카미, 미국 출신의 장쇠와 칭기즈칸이 더욱 '꼬랑지'를 내린 것은 오히려 그 다음이었다.
시저의 행동을 조용히 지켜보던 바우가 아주 편안하게 잠드는 게 아닌가.
'아니, 이 추위에 저렇게 잠을 자다니'.
사파리의 3월은 결코 봄이 아니다.
더구나 아무런 난방장치도 없이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아파트의 밤은 뼛속까지 아리도록 춥게 미련이다.
처음 겪는 추위에 밤새 뒤엉켜 서로의 체온으로 보온 효과를 보며 겨우 잠드는 신인들이 보기에 태연하게 자는 바우는 경외의 대상 그 자체였다.
기가 질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음날 아침 바우는 간이방사장에 나갔다.
시저가 유난히 어깨에 힘을 넣고 우쭐거리며 뒤를 따랐다.
'본토파'가 본격적으로 발대식을 하는 날이었다.
사육사들은 여전히 동물들의 충돌을 막기 위해 본토파와 이방인들을 철저히 격리시키고 있어 간이방사장에는 바우 일행 뿐이었다.
바우는 오랜만에 쪼이는 햇살을 즐기더니 간이방사장을 돌아다니며 오줌을 찍찍 갈기기 시작했다.
'이곳은 내 땅'이라는 선포식이었다.
'행사'를 마친 바우는 가볍게 뛰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마치 헤어드라이를 한 것 같은 수사자 특유의 갈기털이 아침 햇살에 보기 좋게 빛났다.
조금 뒤 아파트로 통하는 문이 덜컹하고 열렸다.
순간 바우의 눈빛이 번쩍이며 어깨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누군가의 침투에 잔뜩 경계하는 자세였다.
그러나 바우의 긴장은 조금 뒤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철문에서 나온 것은 암사자 3마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