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29)
기사입력 1998년 02월 04일 14시 14분
하귀의 말은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명마이다. 몽골군의 후미와 거리가 이백여보로 가까워지자 그는 칼을 고쳐 쥐었다.
그 순간이었다. 몽골군의 후미가 두부분으로 벌려지더니 중간에서 긴 언월도가 불쑥 치켜 세워졌다.
언월도를 세워든 장수는 어깨 갑옷만 걸친 거인이었는데 말의 속력을 늦추고 있었으므로 금방 몽골군의 최후미로 떨어졌다.
"저놈이 누군고?"
하귀가 소리쳐 물었으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그와의 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런데도 그는 가끔씩 뒤를 돌아볼뿐 말에 박차도 넣지 않는다. 이제 하귀의 선봉 백여기가 십여보의 뒤쪽에서 창끝으로 그를 겨누었다.
"저놈이 단기로 치고올 작정이다."
하귀가 달리는 말위에서 소리쳤다.
"용기가 가상토다."
그 순간이었다. 선봉 대여섯기의 기마군이 일제히 창을 내질렀고 동시에 사내가 쥔 언월도의 넓은 날이 햇살에 번쩍이며 휘둘러졌다.
"어허！"
얼굴을 굳힌 하귀가 저도 모르게 말고삐를 움켜 쥐었다.
빗살처럼 휘둘려진 언월도에 선봉의 기마군 서녀기가 일시에 고꾸라진 것이다.
말까지 땅바닥에 뒹굴었으므로 뒤를 따르던 기마군 대여섯기가 부딪고 엉키는 바람에 선봉에 혼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언월도가 다시 휘둘러졌다. 사내는 같은 방향으로 달리며 긴 언월도를 마치 수수깡처럼 휘두르고 있다.
그러자 질풍같이 내닫던 선봉에 혼란이 왔고 그 여파가 하귀의 중군에 까지 이르렀다.
하귀가 앞에 달리는 위사들 사이로 사내를 보면서 감탄을 했다.
"저 놈은 관우의 언월도를 들었지만 마치 장비같은 기개가 있도다."
그 소리를 들은 하귀의 부장 소천이 이를 악물고 뛰쳐 나갔다. 말에 맹렬하게 박차를 넣은 소천은 말고삐를 입에 물고 양손에는 쌍도끼를 들었다.
그는 하귀를 따라 몽골장수 이십여명을 벤 용장이다. 그가 와락 다가가자 위사들이 비껴 섰고 아직도 이쪽에 등을 보이며 달리던 사내가 머리를 돌렸다.
그는 구광이다 소천은 쌍도끼를 치켜 들었다. 그는 바짝 붙어서면서 도끼 하나로 언월도를 막고 다른 하나로 찍을 작정이었다.
그 순간에 구광은 옆쪽으로 언월도를 휘둘렀다.
소천은 도끼를 들어 그것을 막는 순간 눈을 치켜떴다. 힘에 밀린 도끼날이 젖혀지면서 언월도의 칼날이 번쩍 치켜든 자신의 한쪽 팔을 잘라 버린 것이다.
소천은 팔목에서부터 잘려진 팔을 잠시 쳐들고 있더니만 다시 휘둘려진 언월도에 머리를 맞고 곤두박질로 떨어졌다.
"이놈들."
이제 구광은 고삐를 젖혀 말머리를 뒤쪽으로 돌렸다. 그의 목표는 말할것도 없이 선봉군의 주장 하귀인 것이다.
하귀는 소천이 무참하게 패사함과 동시에 말머리를 돌린 사내가 이쪽으로 질주해 오자 평생 처음으로 공포감을 느꼈다.
대군이 한명의 기마장수로 인하여 혼란에 빠져 들고 있었다.
"놈, 장하다！"
그렇게 소리쳤을때 이미 구광은 풀을 베듯 언월도로 주위를 베어 넘기면서 지척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이쪽은 달려가는 중인 것이다. 위사 대여섯이 한칼에 쓰러지고 다시 언월도의 칼날이 자신의 머리끝으로 날아오자 하귀는 싱긋 웃었다.
"역발산이다！"
순간 그의 칼날을 두동강낸 언월도가 몸도 두쪽으로 갈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