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책] 호시 신이치 '그아이의 상자'
기사입력 1998년 02월 03일 15시 54분
"제 작품에는 섹스가 없습니다. 폭력도 나오지 않죠. 그리고 시사문제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대표적 SF작가 가운데 하나인 호시 신이치(72)의 작품은 특이하다.
일본 SF소설의 첫장을 연 작가이며 일본 SF작가클럽의 초대회장을 지내기도 한 이 노작가의 작품은 무섹스, 무폭력, 무시사 등 `3무(無)'를 내세우면서도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유가 있다. 그는 이른바 `샷_샷'(shot_shot)이라는 형식의 극도로 짧은 글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200자 원고지 서너장이 채 안되는 작품까지 있을 정도.
도서출판 장락이 번역소개한 `그 아이의 상자'는 이런 작가의 특징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38편의 글을 싣고 있다.
`죽고싶어하는 남자' `미인이 되고싶은 여자분들, 이 여신에게 부탁해보시라' `취미로 사는 여자' 등 수록작품들은 신비하고 잔혹하며 아이러니와 비유로 가득차 있다. 어떤 작품은 공허하고 당혹스러우며, 어떤 작품은 유머가 넘쳐흐른다.
작가는 이솝우화를 다시 쓰기도 한다. `이솝마을의 번영_개미와 베짱이'를 보자.
개미들은 대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구걸온 베짱이를 식객으로 맞이한다. 그 겨울, 개미들은 베짱이 덕분에 음악을 즐기며 행복하게 생활한다. 게다가 베짱이는 식량창고에서 썩어가던 식량의 일부가 발효되어 술로 변한 것을 발견하고 개미들에게 술맛까지 가르쳐준다. 개미들은 마침내 일과 함께 놀이의 즐거움도 깨닫게 된다.
어쩌면 작가는 개미처럼 일만 하는 일본인들을 비판하려고 이런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이승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