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28)
기사입력 1998년 02월 03일 14시 06분
구광이 치켜든 것은 길이가 열자나 되는 철봉에 대도의 날을 붙인 것이니 무게가 백근이 넘는 언월도였다.
미염공 관우가 팔십근짜리 청룡언월도를 휘둘렀다 하나 고려인 구광의 언월도는 더길고 더 무겁다.
또한 그만큼 위력이 세서 한번 휘두르면 볏줄기가 낫에 베어지듯이 앞쪽이 판판해졌다.
"만척이 살았느냐！"
다시 벽력같이 외친 그는 이제 하귀의 중군 옆구리를 쑤시고 들어갔다. 물론 그가 최선봉이다.
용장밑에 약졸이 없는 법이다. 무서운 구광의 기세에 뒤를 따르는 오천의 여진군은 홀린듯이 기운을 뽑내었는데 제각기 눈을 치켜뜨고는 미친 듯이 함성을 질러댔다.
구광은 백근 언월도를 바람개비처럼 돌려 앞길을 뚫었다. 말머리가 베어지고 기마군의 몸통이 두동강이 되었으며 비켜 서려던 기마의 뒷다리가 잘려졌다.
불을 품는 듯한 두눈을 번뜩거리면서 그가 다시 고함을 쳤다.
"만척이！ 이 야적놈아！ 살았느냐！"
그의 목표는 오직 만척 뿐이다. 남송의 맹장 하귀의 영기가 옆쪽에서 펄렁이고 있었지만 그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러나 하귀의 중군 이만기는 순식간에 두동강으로 잘려졌다. 무지막지한 여진군의 기습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전법에도 전혀 맞지 않게 이쪽 중군을 비켜가는 바람에 대형을 겨우 옆으로 벌렸던 남송군은 혼란에 빠졌다.
구광은 언월도를 날려 막 자신의 이름을 외치려는 남송 장수의 목을 베었다.
대꾸할 기분도 아니려니와 한어도 모른다. 그는 다시 고려말로 벽력같이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야적놈！"
그 순간 바로 앞쪽에서 고함 소리가 났다. 고려말이다.
"구광이 네가 왔느냐！"
뒤섞여진 기마군 사이로 만척의 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지더니 이번에는 바로 앞에 나타났다.
"이놈아, 자다 일어났느냐！"
구광이 버럭 소리쳤다.
"와주었구나！"
온몸에 피칠을 한데다가 머리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어서 그는 핏물에 빠진 귀신 형상이었다. 그의 두눈에서 핏물이 흘러 내렸다.
"이제 대안으로！"
만척이 소리높여 외치자 주위 군사들이 따라 외쳤다. 이제 남송군에 등을 보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영기가 흔들렸고 살아남은 만척의 기마군은 일제히 말머리를 돌렸다.
그들과 한덩이가 되어서 구광의 기마군이 말을 달렸다. 제대로 대형이 잡혀가는 것이다.
"쫓아라！"
하귀의 선봉 오순은 톱처럼 된 칼을 버리고는 부하가 건네준 새칼을 받았다.
구광의 기마군은 하귀의 중군을 토막으로 자르고 진입해 와서는 곧장 대안으로 빠지는 바람에 그의 기마군은 아직 구광과 부딪치지 않았다.
이를 악문 오순은 모질고 독한 성격으로 이제까지 몽골장수 십여명을 벤 무장이다.
그가 칼을 휘두르며 내달리자 부하들이 뒤를 따랐다. 선봉군 일만기에서 아직도 칠천기가 남아있는 것이다.
구광의 기마군 후미는 바로 지척이었다. 벌판은 다시 말발굽소리로 뒤덮였고 달리는 와중에도 양군은 재빠르게 진용을 정비했다.
위사 백여기를 이끈 오순은 자신이 최선봉을 맡아 풍우처럼 뒤를 쫓았다.
곧 한수가 정면에 나타날 것이고 길이 막힌 몽골군이 강을 끼고 달린다면 옆구리가 노출될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