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26)
기사입력 1998년 02월 01일 15시 36분
허복은 날아온 칼날을 받아 튕기면서 송군 장수의 어깨를 내리쳤다.
말고삐를 놓친 장수가 말등에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는 앞으로 내달렸다.
이제 거의 송군의 진형 끝에까지 닿아 있었다. 그의 뒤를 바짝 붙어 따르는 고려와 여진 기병들이 내지르는 함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들도 승전의 분위기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놈！"
창을 내질러온 송군 기병의 창날을 피한 그가 창자루를 쥐었다. 그리고는 칼을 날려 기병의 목을 쳤다. 피가 튀었다.
이미 그의 몸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자신의 것인지 튄 피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뚫었다！"
칼을 치켜든 그가 목이 터질듯이 외치자 뒤를 따르는 기병단이 아우성을 치듯 따라 소리쳤다.
허복은 전라도 전주 태생의 무관이다. 그는 전라병마사 휘하의 낭장으로 있다가 이번 원정군에 차출 되었다.
이제 앞쪽의 훤한 공간이 보였으므로 허복은 말에 박차를 넣었다. 남송군의 진열을 뚫고 뒤쪽으로 나온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허복은 우측에서 내달려오는 일대의 기마군을 보았다.
구름같은 먼지를 내품으며 달려오는 기마군은 대군이었다.
"이런！"
허복은 부드득 이를 갈았다. 하귀의 중군(中軍)이다. 그들이 이렇게 바짝 붙어 있을 줄은 예상밖이었던 것이다.
가쁜 숨을 가다듬은 허복은 순간 말머리를 그들에게로 돌렸다.
본래의 계획은 반대쪽인 왼쪽으로 돌아 강가로 달려나가야 했지만 그렇게 되면 하귀의 대군에게 등을 보이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바짝 다가온 상황에서는 일격에 무너진다.
"나를 따르라！"
칼을 치켜든 허복이 말을 내달리며 외치자 기병단은 군말없이 뒤를 따랐다.
양군은 순식간에 부딪쳤고 다시 격렬한 혼전이 일어났다. 허복은 군사들을 제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송군의 장수를 보았다.
투구에 금장식을 달고 화려한 갑옷을 걸친 그는 순식간에 말머리를 붙여왔다.
"이 쥐같은 고려놈！"
칼을 내리치면서 그가 외치자 허복은 칼등으로 받아쳤다. 그도 한어를 안다.
"썩은 한족놈이 감히！"
다시 한번 칼날이 부딪치면서 그들은 말의 배를 붙이고 섰다.
사방에서 울리는 쇳소리와 함성, 비명이 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다시 삼합째가 되었을때 허복은 자신의 기력이 떨어져 있는것을 알았다. 상대의 칼을 받아 쳤으나 힘에 밀린 것이다.
"죽어라！ 고려놈아！"
다시 네번째 칼날이 날아온 순간 허복은 이를 악물고는 힘껏 칼을 치켜 들었다. 칼을 몸으로 받으면서 상대방의 목을 찌르려는 것이다.
"어억！"
비명은 송군의 장수에게서 났다. 목이 꿰뚫린 그는 뒤로 몸을 젖히더니 군마의 발굽사이로 떨어져 보이지 않았다.
"으윽."
허복은 어깨에서 가슴까지 깊숙히 베어져 있었다. 그순간 뒤에서 고려군 기병 한명이 다가왔다.
"장군！"
붙어선 군사가 찔러오는 남송군의 창날을 쳐내면서 외쳤다.
"상처가 깊소이다. 어서."
"밀고 나가라！"
소리친 순간 그의 입에서 핏덩이가 품어져 나왔다.
"고려군은 이 싸움을 이겨야 한다. 그래야."
다음 순간 옆에서 날아온 창날에 가슴을 꿰인 허복은 숨이 끊어졌다.
X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