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가Y파일] 이상벽 '내일도 눈 내려야 할텐데'
기사입력 1998년 02월 01일 15시 36분
언제나 따뜻한 인간미로 주변을 훈훈하게 만드는,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질문으로 상대방을 자신의 의도대로 끌고가는 명 MC 이상벽.
암울하고 가난했던 60년대 말. 프로레스링 김일 선수의 헤딩 한 방이 온 국민을 울리고 웃겼던 그 시절. 우리의 이상벽은 처음으로 그 당시에는 생소했던 MC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모대학 3학년에 재학중이던 이상벽은 지금은 없어진 청계천에 위치한 야간업소를 통해 처음 무대에 섰다고 한다.
대학생이 웬 야간업소냐고 반문하겠지만 당시 TV 방송국은 공개홀이 절대 부족해 이처럼 야간업소에서 가끔씩 쇼 녹화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음악 평론가로 활약하는 임백천씨가 PD였고 출연자는 대학 졸업반인 조영남, 송창식, 정훈희 등 젊은 가수들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녹화나 생방송이나 모두 첫 멘트가 매우 중요한 것인데, 그나마 데뷔 무대에서의 첫 멘트란? 그는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하다고 했다.
어쨌든 그때는 겨울이었는데 마침 눈이 푸짐하게 내려 덕분에 데뷔 무대치고는 시작할 말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사회를 맡은 이상벽입니다. 하늘에서 이 날을 축복이라도 하듯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럼 소개하는 가수는 아무개！ 마느은 ∼∼박∼∼수∼우."
임백천PD의 Q사인에 따라 그날 이상벽은 정말 열심히 그리고 무사히 2시간 가량의 녹화를 끝냈다. 비지땀을 한 바가지나 쏟은 후에 PD의 눈치를 엿보았더니 썩 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그제서야 이상벽은 휴！ 한숨을 쉬면서 위풍당당하게 서소문에 있는 방송국（TBC TV）으로 향했다.
녹화 테이프를 전달하고 학교에 갔다가 이튿날 첫 녹화에 대한 평가나 반응을 보기 위해 방송국에 간 이상벽.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제작부장의 눈매가 심상치 않았다. `어！ 이상하다'. 분명 뭐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이상벽은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호랑이같은 제작부장의 일성！
"이봐, 자네 동네는 겨울 내내 눈이 오나?"
"예?∼∼." 우물쭈물하는 이상벽.
"어제 찍은 것은 녹화란 말이야, 녹화！ 서울은 내일 방영되는데 눈 안오면 자네가 책임질거야? 그리고 부산은 일주일 뒤에 방영된단 말이야！ 부산에 눈 안 온다는 것 알아 몰라！"
지금도 이상벽은 그 때 그 사건을 생각하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다고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그 일이 좋은 경험으로 남아 자신의 방송생활에 큰 보탬이 됐다고 한다.
김민성（MTM 대표, 대경전문대 연영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