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태초의 혼란(2)
기사입력 1998년 02월 01일 15시 35분
시저로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암컷이 3마리나 있는 천국을 지켜야 했다.
`카앙－.'
시저는 더욱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주먹으로 철창을 때렸다.
엄포였다.
나서부터 줄곧 동물원에서 살아온 시저가 철창 밖의 적을 공격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해(自害)'에 가깝게 철창에 몸을 부딪치고 난리를 치는 것은 천국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은 안간힘이었다.
시저는 조바심이 났다.
`도대체 바우형은 언제 오는거야?'
시저가 기다리는 것은 미국에서 함께 건너온 바우였다.
바우는 시저의 친형은 아니지만 나이도 한살 더 많고 덩치도 커서 믿음직스럽기만 했다.
시저도 자기가 있던 동물원에서 성질 더럽기로 소문난 사고뭉치였지만 바우를 처음 보자마자 바로 `꼬랑지'를 내렸다.
성질로 어떻게 해볼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차라리 바우 `그늘'에 있으면 감히 어떤 놈이 덤비지 못해 언제까지나 `집권 여당' 소속으로 있을 것 같았다.
바우는 며칠전 앞발이 문틈에 끼어 다치는 바람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 정도 부상이면 아파트에 있으면서 치료를 할 수도 있지만 날씨가 춥고 사파리가 개장하기 전이어서 보다 완벽하게 치료하기 위해 입원한 것이었다.
시저로서는 바우가 없는 사이 천국을 지켜야 했다.
2마리씩 짝을 이룬 이방인들도 한놈이 길길이 날뛰는 것을 보고 짓밟겠다는 듯이 덤벼들었다.
킹과 까미, 장쇠와 징기스칸 커플은 출신지가 다른 만큼 애당초 모르는 사이였지만 공항검역소에서 오랫동안 대기하면서 친해졌다.
알 수 없는 곳에 배치된다는 공포감이 이들을 `동지 의식'으로 꽁꽁 묶어놓은 셈이었다.
`함께 죽을 수 있는 벗'이 있다는 안도감을 갖고 도착한 곳이 바로 용인 에버랜드.
이들의 결속을 더욱 단단히 묶어준 것이 바로 시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