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태초의 혼란(1)
기사입력 1998년 01월 31일 14시 30분
[시작하면서]
74년 3월, 봄은 왔지만 사파리 개장을 앞둔 사자들은 꽃샘 추위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지금 사파리에 있는 사자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체질이 `한국화'됐지만 초창기 사자들은 미국과 아프리카에서 온 `이민 1세대'여서 처음 겪는 추위에 고생을 해야만 했다.
사파리측은 개장을 앞두고 1년전부터 사자들을 수입, 한국 기후에 적응을 시키고 있었다.
`카앙∼.'
숫사자 시저는 본능적으로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상대는 무려 수컷 4마리였다.
1대4의 싸움.
시저로서는 힘겨운 싸움이 될 게 틀림없었다.
이같은 사실을 잘 아는 시저는 미리 선수를 치기 위해 큰 소리를 치며 기선 제압에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상대도 그리 녹녹치 않았다.
시저 못지 않게 큰 소리를 치며 매서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한가지 다행스런 일은 굵은 쇠창살이 이들 사이를 가로막아 `육박전'이 일어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시저가 자기 영토와 암컷을 지키기 위해 칼을 뽑은 상대는 이제 막 아프리카에서 온 5살바기 형제 킹과 까미, 미국에서 온 4살바기 장쇠와 징기스칸이었다.
어느 사회에나 `기득권'이라는 게 있다.
오죽하면 `개도 제 동네에서는 50점을 따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시저가 무려 1대4의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기선을 제압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것도 바로 사파리에 일찍 이주해온 `기득권'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국파와 아프리카파 놈들은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처음 보는 추위에 신경이 날카로운데 왠놈이 `자기 땅'이라고 악을 쓰니 마침 잘 만났다는 눈치였다.
만약 이들 사이에 철창이 없었다면 사파리는 개장도 하기 전에 몇놈이 죽어나갈 판이었다.
시저로서는 추운 것을 빼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의호식을 하던 터였다.
미국에 있을 때는 기껏해야 암컷 1마리를 데리고 살았지만 고생 끝에 낯선 땅에 오니 암컷이 무려 3마리나 있는 게 아닌가.
`천국'에서 황홀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시저 앞에 나타난 `이방인'들은 반드시 해치워야 할 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