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25)
기사입력 1998년 01월 31일 13시 09분
"전장의 예절도 모르는 오랑케 놈들."
밀려 내려오는 기마군을 본 오순이 불같이 성을 냈다.
"공격이다！"
그가 칼을 빼어 휘두르자 일만기의 기마군이 일제히 돌진했다. 엄청난 기세였다.
궁곡 뒤쪽의 평원은 양군의 기마 일만오천기가 내달리는 말굽소리로 마치 지진이 난것처럼 울렸으며 함성이 하늘을 덮었다.
말발굽에 깔린 남송군의 장수 사성은 이미 흔적도 없다.
오순의 기마군은 마치 파도처럼 네겹의 대형을 만들어 몰려왔는데 이미 숫자가 적은 고려군 기병이 송곳처럼 파고 들것에 대비한 진형이다.
고려 여진 연합 기마군의 선봉을 맡은 장수는 여진장수 토리반이었다.
양군이 전속력으로 달려왔으므로 그들은 순식간에 부딪치면서 격렬한 혼전이 일어났다.
양군 모두가 숨몇번 내쉴 동안의 이 혼전이 전황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다.
이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밀리면 그 다음 순간부터는 걷잡을 수가 없어지는 것이다.
토리반은 이미 사성을 떨어뜨려 죽였으므로 기세가 높았다. 앞을 가로막는 남송 기마병 둘을 단칼에 베고 말에 박차를 넣었다.
"밀고 나가라！"
여진말로 외쳤고 그의 부하들도 따라 외쳤다. 그 순간이었다.
옆쪽으로 다가온 남송의 장수 하나가 창을 내질렀다. 토리반이 칼을 휘둘러 창날을 자르고는 씨익 웃었다.
"네까짓 것이 감히."
섬광처럼 날아간 그의 칼날이 상대방의 어깨에서 배까지를 비스듬히 베었다.
"으윽！"
남송의 장수는 단말마의 신음을 지르더니 말에서 떨어졌고 토리반이 허리를 편 순간이었다.
그는 등이 화끈해진 느낌을 받으면서 충격에 밀려 몸이 앞으로 숙여졌다. 칼을 받은 것이다.
이어서 날아온 칼날이 목에 닿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는 눈을 부릅떴다.
"몽골장수를 베었다！"
한어로 소리치는 목소리를 그의 떨어진 머리에 달린 귀가 들었다.
"나는 여진군 장수다."
하고 생각한 순간 그의 의식은 끊겼다.
"앞으로 나가라！"
토리반이 죽자 한순간 추춤했던 이쪽 군세의 선두에 선것은 고려군 장군 허복이었다.
고려검을 치켜든 그는 이미 온몸이 피투성이어서 마치 귀신 같았다.
"고려군이여！ 나를 따르라！"
"와앗！"
고려 기마군이 목이 터질듯이 외치면서 그의 뒤에 붙으려고 눈에 불을 켰다. 용장밑에 약졸이 없는 법이다.
피를 보는 전장 터에서 눈에 불을 켜면 평소 힘의 다섯배는 나온다.
여진군의 뒤에 붙었던 고려군이 이제 그들과 한덩이가 되었고 허복이 선봉으로 그들 모두를 이끌고 있다.
"잘한다！"
뒤쪽 백보쯤의 거리에서 내달아오던 만척이 소리쳤다. 물론 고려말이다.
"밀고 나가라！"
이제 선봉과 중군, 후군의 구별도 모호했다. 모두 한덩이가 되어 있었는데 앞으로 나가고 있다.
그것은 남송군의 진형을 뚫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고려군의 장군 최경부가 말의 배를 붙여왔다.
"장군！ 우리가 밀고 나가고 있소이다！"
그의 얼굴은 격정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우리 고려군이 이제 선봉이오！"
칼을 치켜든 만척이 말을 받았다.
"이곳이 고려땅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