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24)

기사입력 1998년 01월 30일 15시 58분


"대군이다."

장군 허복이 탄식했다.

"선봉이 일만기가 넘겠소이다."

이쪽은 나지막한 구릉 위여서 앞쪽의 평원에서 다가오는 남송군의 선봉이 다 보였다.

햇살을 받은 무수한 창날이 반짝였고 기마군의 뒤쪽은 자욱한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선봉은 하귀의 맹장인 오순이오."

옆에 서있던 최경부가 말했다. 척후가 오순의 깃발을 보고해온 것이다.

만척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로서는 이런 대접전이 처음이다. 그는 허리에 찬 장검을 빼 들었다.

"공격 준비！"

이쪽은 기병 5천이니 적진을 송곳처럼 쑤시고 들어가 강쪽으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뒤쪽에는 보군 2만이 함정과 방책을 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강쪽에만 통로를 뚫어놓은 것이다. 그순간 이었다.

"장군, 놈들이 멈추고 있소."

최경부가 다급하게 말했다. 우레소리처럼 들리던 말발굽 소리가 조금 가라앉는것 같았고 먼지구름이 기마군의 앞쪽으로 밀려왔다.

남송의 선봉군이 멈추고 있는 것이다. 눈을 부릅뜬 만척이 칼을 내렸다. 적과의 거리는 이리(2里)가 채 못되었다.

먼지가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빽빽이 늘어선 기마군이 드러났다. 깃발과 창이 숲처럼 늘어선 사이로 창을 세워든 장수 하나가 달려나왔다.

갑옷의 쇠비늘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창의 넓은 날에 위압감이 풍겨졌다.

"허어."

만척이 쓴웃음을 지었다.

"오순이 단병 접전을 하자는구나."

지금은 부대전술의 시기였다. 그러나 백여년 전만해도 양군의 장수가 하나씩 나와 자웅을 겨루며 무용을 뽐내었던 것이다.

긴창을 휘두르며 달려온 장수가 벽력같이 소리쳤다.

"나는 송제국의 장군 사성이다！ 나와 겨눌자는 나서라！"

만척이 주위를 돌아 보았다.

"누가 저놈을 잡겠느냐?"

"소장이 단칼에 목을 베리다."

하며 나선것은 만척 휘하의 여진군 장수 토리반이다. 만척이 머리를 끄덕이자 그는 살같이 구릉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만척이 옆에 선 최경부를 바라보았다.

"장군, 토리반이 일합을 겨루는 순간 공격이오."

말고삐를 감아쥔 그가 앞쪽을 노려보았다.

"단병접전의 승패 따위는 무시해도 좋소."

화살처럼 달려간 토리반은 장검을 높게 치켜 들었고 사성의 긴창이 앞으로 길게 뻗쳐졌다.

"챙！"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는 토리반의 칼날이 사성의 창을 튕겨냈기 때문이다.

"이야앗！"

그순간 만척은 박차를 넣고 앞으로 내달렸고 뒤를 백여명의 근위기병이 따랐으며 곧 5천기의 기마군이 둑이 터진듯이 밀려 내려갔다.

함성이 대지를 울렸는데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사성은 토리반의 칼날을 몸을 젖혀 피했지만 아직 말머리는 틀지 못했다.

그래서 쏟아져 내려오는 이쪽 기마군을 정면에서 보고는 몸이 굳어졌다.

그는 고삐를 채 말머리를 틀었는데 힘이 지나쳐 앞다리가 꼬여진 말이 비틀거렸다.

"이놈！"

돌아선 토리반이 그 기회를 놓칠리가 없다. 그의 칼날이 사성이 탄 말의 엉덩이를 베었고 중심을 겨우 잡았던 말이 이제는 앞다리를 번쩍 치켜 올렸다.

사성은 곤두박질치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는 땅이 울리는 말굽소리를 들었다. 함성도 귀를 울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