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성직격인터뷰] 현대 조스트롱
기사입력 1998년 01월 26일 15시 27분
하일성위원（이하 하）:1호 외국인선수를 만나서 기쁘다.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는 들었는지.
조 스트롱（이하 스）:통역하는 이준호씨로부터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야구해설가라고 듣고 나왔다. 나 역시 이런 분을 만나 영광이다.
하:첫대답부터 맘에 든다.（폭소） 한국에 처음 온걸로 아는데 인상은.
스:91년 대만으로 가던중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서울에 18시간동안 머문 적이 있었는데 물론 그땐 아무것도 못 느꼈다. 음식이 너무 맛있고 보는 사람들마다 아주 친절하다는걸 이번에 알았다.
하:계약기간이 2월부터인데 서둘러 입국한 이유는.
스:같이 뛸 현대 선수들과 하루라도 일찍 만나 친해지고 싶어서다. 뒤늦게 합류해서 라커룸 구석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보단 백배 낫다.
하:뭐든지 1호인데 혹시 성격이 급한 편은 아닌지.
스:（정색을 하며）절대 아니다. 평소 성격도 그렇지만 마운드에서는 특히 침착해지는 스타일이다.
하:36세의 나이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던데.
스:팀훈련에 합류한지 10일이 훨씬 넘었다. 만일 체력에 문제가 있었으면 벌써 탄로 나지 않았을까. 더욱이 마무리로 뛴다면 체력 소모는 더 적을 것이다.
하:마무리는 일주일에 두세번 등판할 수도 있는데 그건 잘못 생각한거 아닌가.
스:어깨가 빨리 풀리는 체질이기 때문에 마무리가 오히려 더 편하다. 그리고 설사 일주일에 6게임 모두를 대기한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체력이 있다.
하:미국에서의 별명이 타이거라고 들었다. 한데 내가 보기에는 전혀 호랑이 냄새가 나질 않는데.
스:（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실전에서 내 피칭 모습을 못 봐서 그렇다. 승부근성과 집중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하:그렇다면 빈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스:아무리 타이거지만 다른 선수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행위는 절대로 싫다. 설사 벤치에서 빈볼 사인이 나오더라도 난 못할 것 같다.
하:90년부터 3년간 대만에서 뛰게 된 계기는.
스:당시 소속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서 여러가지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 감정이 쌓여 있었다. 그런 차에 대만행 제의가 들어와 한번 부딪혀 보자고 결심했다.
하:대만에서 성적이 16승, 15승, 12승으로 갈수록 내려갔는데.
스:첫해인 90년부터 프로야구에 도박이 시작된 이후 갈수록 납득하기 힘들게 지는 게임이 많아져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다. 절대 변명하려는게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하:한국 야구를 실제로 본 경험이 있나.
스:대만에 있을때 삼성과 대만팀의 연습경기를 한번 봤는데 매우 빠르고 강해 처음엔 일본팀인줄 알았다. 다음날 선발등판 때문에 일찍 자기 위해 게임 도중에 일어서면서 무척 아쉬워 했던 기억이 난다.
하:어느 정도 성적을 자신하나.
스:내가 구체적으로 성적을 공언한다면 한국 선수들에게 건방지다는 인상을 줘 적대감을 불러일으킬 염려가 있다. 난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니 지켜봐 달라.
하:워낙 선뜻 사인을 해 이면계약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는데.
스:그런게 있으면 나도 좀 봤으면 좋겠다. 돈에는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
하:물려받은 재산이라도 많단 얘긴가.（웃음）
스:나는 부자도 가난뱅이도 아니고 그저 살만한 정도다.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원래부터 투수였나.
스:초등학교때인 13세때 우익수를 봤는데 홈에 송구하는 것을 본 코치의 권유로 그 다음부터 쭉 투수만 해왔다.
하:투수란 어떤 존재라고 보나.
스:야구에서 투수는 그라운드 전체를 장악하는 존재다. 투수가 호투하면 수비진도 안정되고 반대의 경우 전선수가 불안해지므로 엄청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질문의 의도에 맞는 대답인지 모르겠다.
하:오, 굿！（엄지를 치켜세우며） 그건 그렇고 배번도 27번이고 목걸이에도 27을 새겼는데 이 숫자에 무슨 한이라도 맺혔나.
스:27을 좋아하는 이유는 숫자의 모양이 멋있고 안정감이 있어서다. 어린 시절 농구와 미식축구도 했는데 그때도 배번은 항상 27이었다.
하:안경을 쓰고 있는데 시력은 얼마나 되나.
스:경기때는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는데 충분히 교정될 수 있는 수준이니 아무 문제가 없다.
하:가족관계를 물어봐도 되는지.
스:이혼한 전처가 딸 둘과 함께 시애틀에 살고 있다. 일곱살인 큰 딸은 태권도, 가라데, 야구를 좋아하는데 전처가 야구 놀이를 절대 못하게 해 속이 상한다.（한숨）
하:김치를 비롯해 한국음식을 잘 먹는게 혹시 쇼맨십은 아닌가.
스:싫은걸 내가 왜 먹겠나. 에이전트인 한국인 우종희씨가 한동네에 살면서 한국 음식을 자주 해줘 전혀 거부감이 없다. 특히 삼계탕을 좋아해 길에서 닭그림이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고 본다.
하:최근 한국의 경제 난국을 혹시 알고 있나.
스:알지만 실감하진 못한다. 형편이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지게 마련인데 현대 선수나 직원들은 늘 따뜻하고 표정이 밝기 때문이다.
하:현대 선수중에 영어는 누가 가장 잘 한다고 생각하나.
스:구단직원들은 김경기가 제일 낫다고 하던데 좀처럼 말을 붙여오지 않아 잘 모르겠다. 영어가 되든 안되든 말을 제일 자주 걸어오는 사람은 김익재다. 성격 좋고 재미있는 친구다.
하:한국말을 몰라서 겪은 에피소드가 있을법 한데.
스:왜 없겠나. 동료들이 "야, 이리 와"가 좋은 인사라고 해 김시진코치한테 고개를 꾸벅 숙이며 그대로 말했다가 당황한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한국말은 반말과 존대말을 구별하는게 제일 어렵다.
하:오늘 무척 좋은 인상을 받았다. 끝으로 한국에서 언제까지 야구를 하고 싶은가.
스:현대에서 더 이상 필요없다고 할 때까지다. 내가 얼마나 야구를 더 할지는 신만이 아는 일이지만 4∼5년은 더 뛸 자신이 있다.
하:부디 두딸이 좋은 아이들로 자라기를 바라며 한국에 데려올 기회가 있으면 연락해 달라. 내가 식사에 초대하고 싶다.
스:（악수를 신청하며）멋진 제안을 해줘서 고맙다.
[정리＝박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