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석] 주객 뒤바뀐 콘서트장
기사입력 1998년 01월 25일 15시 41분
세종문화회관에 근무하시는 아무개님들에게. 저는 24일 오후3시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던 유진 박의 `록 콘서트' 공연을 보러갔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30대 이상의 관객들까지 몰려들어 유진 박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객석은 삽시간에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죠. 과연 유진 박이더군요. 소녀팬들의 꺅꺅대는 비명소리, 박수소리. 저같은 30대마저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한시간쯤 지났나요. 개그맨 오제형이 나와 유진 박과 잠시 얘기를 나누었지요. 유진 박은 "나는 클럽출신이라 관객들이 젊잖게 앉아있으면 신이 안난다"는 요지의 말도 하더군요. 그러니까 오제형은 관객들에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유진 박이 미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주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관객들은 호응했죠. 저는 차마 꺅꺅거리지는 못하고 박수만 열심히 쳤습니다. 한데 그뒤의 상황은 씁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유진 박과 관객들은 약속대로 한판 신나게 놀려고 했죠. 일어서고, 소리치고, 일부는 앞으로 뛰어나가 몸을 흔들었습니다. 다른 관객들도 최소 헤드뱅잉 정도는 하더군요.
이런, 신바람은 순식간에 끝났습니다. 바로 세종문화회관 관계자이신 아무개님들께서 나타나셔서 진압작전을 폈기 때문이죠. 어떤 아무개님은 손가락질까지 하시더군요. 관객에게…. 그 삿대질 중엔 저 있는 쪽을 향한 것도 있어서 참 기분이 나빴어요.
하여튼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착해요. 진압작전은 성공리에 끝났으니까.
근데 말예요, 그 광경을 보던 유진 박이 연주 중간에 관객들을 향해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라고 외치는게 아니겠어요.
야, 이거봐라. 한둘이 일어나더니, 수십명이 일어나고, 수백명이 일어나고, 결국 거의 다 일어났죠. 무대 앞으로 뛰쳐나가 몸 흔드는 관객들도 다시 나타났고. 죄송하지만 전 고소했어요. 고거 참 `쌤통'이다, 했어요.
관객들은 왜 라이브 공연장을 찾을까요. 음질로 말하면 CD만큼 좋은게 없는데 말이죠. 아마 공연장에는 연주자와의 어떤 교감이나 커뮤니케이션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교감을 느끼는 방식은 장르마다 다르겠죠. 유진 박 공연처럼 `록'공연의 경우 머리흔들기 몸흔들기 소리지르기 따위는 기본이죠. 싸가지 없는 녀석들의 광란으로만 보면 안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그리고요, 공연장의 주인은 관객과 연주자 아닐까요. 불청객이었던 아무개님들의 진압작전과 삿대질은 참 그랬어요….
[이승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