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22)

기사입력 1998년 01월 25일 15시 41분


"기병 5천에 보군은 2만 뿐이다. 나머지 1만은 치중대에 붙어있단 말이다."

이도명이 부릅뜬 눈으로 부사령 한석기를 노려보았다.

"우리는 제물이 된것이야. 장세걸의 8만 기마군 앞에서는 반각도 버티지 못한다."

"감숙성군이 3리 거리에 있소이다. 장군."

이맛살을 찌푸린 한석기가 목소리를 낮췄다.

"장군, 내일 오시 무렵이면 장세걸의 대군이 도착할 것이오. 방비를 더욱 든든하게 하셔야."

남송의 대군이 말머리를 이쪽으로 돌렸다는 연락이 온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그리고는 뒤를 이어서 카라차르의 전령은 고려군이 선봉이 되었다는 영을 전달해온 것이다.

이도명이 한석기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진막 밖에 서 있었는데 주위의 제장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카라차르 대도독에게 그대가 가서 청원 하도록 하라. 고려군은 본래 치중대의 소임이라 기마군은 2천뿐이다. 감숙성군이 앞으로 나서야 이치에 맞다. 아니면 뒤쪽의 요양성군을 끌어 오던지."

"장군."

바짝 다가선 한석기가 목소리를 낮췄다.

"제장들이 듣고 있소이다. 사기에 영향이 있을 터인즉 목소리를 낮추시기를."

"지금 그것을 따질 때인가?"

버럭 역정을 낸 이도명이 오히려 목청을 더 돋우었다.

"곧 고려군이 몰사당할 상황이다. 나는 고려군 장졸들의 생사를 책임지는 사람이야. 이대로 묵과 할 수는 없다."

"장군, 영이 한번 내렸으니 번복되지 않소이다. 소장이 간다면 오히려 고려군은 조롱거리가 될것이오."

"도대체 보병 2만과 기병 5천으로 어찌 기병 8만을 당한단 말이냐?"라고 했을때 뒤쪽에서 장수 하나가 나섰다. 만척이다.

그가 여진기병 3천을 이끌고 고려군을 지원 나왔던 것이다.

"고려군 안에서는 천하의 용장이라면서 거들먹 거리더니."

그의 목소리가 컷으므로 제장들은 물론 아래쪽의 위병들까지 이쪽을 올려다 보았다.

"지금은 저 살겠다고 제장들 앞에서 갖은 추접을 다 떠는구나."

"무… 무엇이 네놈이."

이도명이 수염을 떨며 손끝으로 만척을 가리켰다.

"감히 네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여기는 원제국의 땅이며 전장이다."

버럭 소리친 만척이 한걸음 다가섰다.

"아예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깃발을 거꾸로 들고 줄행랑을 놓아라. 그것이 차라리 뒤쪽 우군에게 나을 것이다."

"이, 이런 쳐죽일."

하지만 이도명은 만척을 어떻게 할수는 없다. 가래를 소리내어 긁어모은 만척이 앞으로 뱉어냈는데 그것이 이도명의 발밑에 떨어졌다.

"썩은놈은 어서 이곳을 떠나는게 낫다. 내 휘하 여진기병이 빈 곳을 메울테니까."

그러자 한석기가 나섰다.

"이보오. 만장군, 고정하시오."

"비겁한 대장은 부하가 목을 베어도 좋다고 황제가 말하셨다 하오."

칼자루를 쥔 만척이 이도명을 노려보았다.

"제장들 앞에서 도망칠 궁리나 늘어놓는 저런놈은 당장에 목을 베어야 하오."

이도명은 사색이된 얼굴로 수염을 떨면서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은 몽골군의 군율이다.

실제로 그런 일도 있었다고 들은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