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19)

기사입력 1998년 01월 22일 13시 59분


윤의충이 이도명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지형을 둘러보다가 들른길이오."

"잘 오셨소이다."

진막 안은 무거운 정적으로 덮여져 있었다. 이윽고 윤의충이 고려군 장수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너희들 중에서 내가 한때 고려국 교정별감이셨던 김준 대감으로부터 진주목의 방호사 직임을 받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자가 없을 것이다."

그의 고려말이 찌렁이며 진막을 울렸다.

"나는 지금도 고려국의 역적이며 나와 친교가 있었던 사람은 처형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의 치켜뜬 눈길을 받는 장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 나는 원제국의 정남대장군 대도독이며 요양행성 병마절도사로 이곳에 서 있다. 감히 나에게 머리를 들고 나설 장수가 있다면 어디 나서보아라."

진막안은 숨소리도 나지 않았으며 에르케도 분위기에 눌린듯 눈만 굴렸다.

윤의충의 말이 이어졌다.

"고려국 장수들이여, 너희들은 곧 남송제국의 멸망을 보게 될것이다. 무능한 왕과 제 욕심만을 채우는 재상이 집권한 남송제국의 멸망을 보면서 깨우침을 얻도록 하라."

"…."

"그리고 나를 보도록 하라. 원제국이 왜 나를 필요로 하고 있는가? 내 휘하의 여진군은 단결되어 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진족의 운명을 위해서인 것이다."

그가 제장들 쪽으로 한걸음 다가가 섰다.

"여진군은 대공을 세우려는 의욕에 불타고 있다. 그럼으로써 원제국 내에서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며 민족의 장래가 보장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고려국의 기상을 보여라. 그러면 제국이 허술하게 대하지 못하게 될것이다. 고려국의 운명은 너희들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목숨을 다하여 싸우라."

말을 그친 윤의충이 몸을 돌려 이도명을 바라보았다.

"내 휘하의 기병 3천을 지원 하겠소. 고려국의 기병 만으로는 부족할것 같소."

"고맙소이다. 대도독."

이도명이 허리를 숙였다.

"말씀 새겨 들었소이다."

몸을 돌린 윤의충은 제장들을 이끌고 진막을 나갔다.

뒤따라 나온 이도명을 비롯한 고려국 장수들은 진막 밖의 평원을 가득 메운 여진 기병단을 보았다.

갖가지 깃발이 바람에 나부꼈고 세워든 창은 거대한 숲이었다.

각 대는 제각기의 색깔로 깃발과 갑주를 두르고 있었는데 윤의충이 말에 오르자 북과 호각이 울리면서 깃발이 흔들렸다.

그리고는 구름같은 먼지를 일으키며 움직였는데 땅이 울렸다. 정연하여 한치의 오차도 없는 대형이다.

고려국 부사령 한석기가 저도 모르게 깊게 숨을 뱉었다.

"영웅이다."

옆에 서 있던 장군 최경부가 힐끔 그를 보았다. 고려땅에서 이런말을 했다가는 그날로 중형을 받게 될 것이었다.

"이제 아셨소이까?"

그러자 눈을 치켜뜬 한석기가 몸을 돌렸다. 윤의충은 잠자코 말을 몰았으나 뒤를 따르는 만척과 구광은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만척이 아직도 상기된 얼굴로 구광을 바라보았다.

"나는 눈물이 나서 혼이 났다."

구광은 코만 씰룩일뿐 대꾸하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