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돈의 야구보기] KBO 폐쇄성과 시장원리
기사입력 1998년 01월 19일 15시 22분
대부분의 화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상품으로 불리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많은 작품이 비싼 값에 활발하게 거래되기를 강력히 원한다.
때문에 비싸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아니라는 시장 논리가 화랑가를 지배하고 있다.
물론 상업주의에 물들지 않은 화가들도 있겠지만 그 길은 상당히 어려운 길임에 분명하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운동선수들은 자신의 능력을 정당하게 평가해주기를 강력하게 바란다.
프로 선수들은 각종 자료를 내놓는 등 객관적인 수치를 내세워 한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노력한다.
특히 선수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외국 진출은 모든 선수들의 꿈일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 연봉 2억원을 받는 선수가 일본에 갈 경우 국내의 10배가 넘는 2억엔（25억원）을 받는다면 일본행은 당연한 일이다.
또 미국에 진출해 국내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할 100만달러（16억원）의 계약금을 챙길 수 있다면 미국행은 모든 선수의 희망일수 밖에 없다.
하루 아침에 수십억원대를 거머쥐는 거부가 되는데 어느 누가 한국 스포츠의 발전에 헌신하기 위해 국내에 남을 수 있을까.
요즘 야구판이 시끄럽다.
LA 다저스의 박찬호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뒤 한국의 야구선수들은 꿈을 찾아 줄줄이 미국 메이저리그를 노크했다.
뉴욕 메츠에 입단한 서재응을 비롯해 김선우（보스턴） 정 석（LA 다저스） 봉중근（애틀랜타） 등이 각각 계약을 맺어 이미 100만달러 이상되는 계약금을 챙겨 팔자를 고쳤다.
그런데 미국 메이저리그팀과의 계약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위한 절반의 성공을 한 이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한－미 야구협정을 무시하며 독단적인 행동을 해왔던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각구단에 한－미협정을 새로 맺을때까지 한국선수의 스카우트를 일단 보류하라는 공문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19일 보스턴 레드삭스와 조인식을 하고 20일 출국할 예정이었던 LG 이상훈의 미국행은 일단 보류됐다.
이상훈과 함께 서재응－재환형제, 보스턴의 김선우와 김재영, 정 석, 봉중근 등의 거취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한 상태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법률소위원회에서 이같은 결정을 한 것은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강력한 항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메이저리그팀들의 한국선수 스카우트는 무차별하게 이루어 졌다.
유망하다고 판단되는 선수라면 고교 1년생까지 손길을 뻗쳤으니 비난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여기에 대응하는 KBO의 방식 또한 `무차별 금지'라는 쇄국 카드다.
작년 11월 미국 피닉스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확대 드래프트 행사장을 찾아가고 각종 문서를 통해 한국선수의 무차별 스카우트를 거칠게 항의했다.
KBO는 프로의 지명선수나 재학중인 선수 스카우트는 물론이고 프로구단 선수도 접촉을 금하라고 미국측에 요구했다.
한국의 모든 야구선수들은 KBO의 허가를 얻지 못하면 각종 규약에 명시됐듯이 평생동안 다른 어느나라에도 갈수 없다는 것이다.
KBO가 이처럼 폐쇄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은 가뜩이나 선수층이 엷은 시장에서 미국구단이 선수들을 싹쓸이 해 국내 야구수준이 현격하게 떨어질 경우 야구를 할 구단이 과연 있겠느냐는 위기감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우수선수 유출로 한국야구가 망할 위험이 있다면 한국 최고의 스타였던 선동열이나 이종범 그리고 이상훈의 외국진출부터 막았어야 옳았다.
한국 프로의 토양에서 검증되지 않은 아마선수들보다 관중 동원력에서 선동열이나 이종범 등이 크게 앞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KBO는 이번 일을 독단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보다는 자율이라는 틀에 맞추는 것이 옳은 일이다.
미국에서 실패도 하고 성공을 하는 케이스들이 나온 뒤에는 한국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도 조정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선수들의 미국진출은 당연히 시장 원리에 맞춰야 한다.
한국시장을 폐쇄해 국제적인 고아가 되는 것과 시장원리에 맞기는 것중 어느 것이 우리에게 더 유익한지 KBO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 본다.
[부국장대우 야구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