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15)

기사입력 1998년 01월 18일 15시 46분


윤의충이 손을 들자 뒤쪽의 장막이 걷혀지더니 대여섯명의 위사가 들어섰다.

위사 틈에 끼어 있던 장수 하나가 나섰다. 그는 부도독 에르케였는데 몽골인이다.

"대도독, 놈을 총사령께 데려가느니 이곳에서 벱시다."

칼의 손잡이를 쥔 그가 소삼에게 한발짝 다가섰다. 윤의충은 장막뒤에 그들을 숨겨 두었던 것이다.

그러자 채번의 밀사인 소삼이 턱을 들고 웃었다.

"더러운 고려의 개, 채태사는 이럴 경우를 예상하고 내게 이것을 주었다."

다음 순간 주위의 사람들이 미처 손을 쓸 겨를도 없이 소삼은 입안에 무엇인가를 넣었다.

위사들이 그를 잡았을때 소삼의 눈은 이미 흰창이 드러나는 중이었다.

"극독을 먹었다. 끌고 나가라."

윤의충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옆에 선 에르케를 바라보았다.

"채번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야. 아마 갖은 모략을 꾸며 나를 전선에서 이탈시키려 들것이다."

"그 전에 번성을 함락시키면 될 것이오."에르케가 웃음띤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부사령 사천택은 이보다 더한 모략에 시달렸으나 폐하의 신임은 흔들리지 않았소. 남송황제 이종과는 다른 분이시오."

사천택은 한인으로 남송정벌군의 부사령인 것이다. 또한 쿠빌라이의 측근 아흐마드는 서역인이었다.

광대한 대륙의 수백 인종을 다스리는 때문인지 쿠빌라이는 능력 위주의 인사를 했다.

에르케가 몽골인 부도독으로 윤의충의 지휘를 받는것은 감시의 성격도 있겠지만 쿠빌라이식 인사의 일환이다.

진막안의 소동은 시체가 들려 나가는 것으로 끝이 났다.

해가 떠오를 무렵에 총사령 바얀의 전령이 도착했는데 낯이 익은 장수였다.

"대도독, 번성에 응원군이 오고 있소이다. 양희제치대사 이정지가 이끄는 기병 5만이 번성 우측방으로 진군해오는 중이오."

그가 바얀이 보낸 영서(令書)를 내밀었다.

"총사령께서는 감숙행성 병마절도사 카라차르님과 대도독이 연합하시어 그들을 치라고 하셨소이다."

그러자 에르케가 나섰다.

"주장(主將)은 누구로 선임 하셨느냐? 주장이 둘이면 전력이 분산됨은 물론 지휘계통이 혼란된다."

"주장은 카라차르 님이오."

"허어."

이맛살을 찌푸린 에르케가 혀를 찼다.

"그쪽은 기병 1만에 보명 3만으로 군세가 우리보다 약한데도 어찌."

"알았다."

에르케의 말을 자른 윤의충이 전령을 바라보았다.

"영을 따르겠다. 곧 카라차르님과 회동하여 송군을 치겠다고 말씀 올리도록."

"알겠소이다."

전령이 막 허리를 폈을때 윤의충이 생각난듯 물었다.

"강을 건너 진군해야 할테니 치중대가 중요하다. 치중이 끊기면 적지에서 대군이 고립될터 치중부대는 누가 맡느냐?"

"고려군 부도독 이동명이 뒤를 맡을 것이오."

그러자 에르케가 이번에는 더욱 크게 혀를 찼다.

"총사령이 아주 우리 정동행성군을 궁지에 넣는구나. 전의(戰意)도 없는 고려군에게 뒤를 맡기다니. 그자들은 칼을 들 힘도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는 힐끗 윤의충을 보았다. 진막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윽고 윤의충이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다. 영을 받는다고 전해라."

평온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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