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3전4기(13)
기사입력 1998년 01월 18일 15시 46분
사육사 이씨의 온몸에서 순간적으로 식은 땀이 주루룩 흘렀다.
다행히 호랑이도 갑자기 닥친 현실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눈치였다.
호랑이와의 거리는 약 1.5m.
한번에 4∼5m쯤은 가볍게 날듯이 뛰는 호랑이의 점프능력으로 봤을 때 눈깜빡할 사이면 덮칠 수 있는 거리였다.
이씨의 머리 속에 `사육사 안전수칙'이 떠올랐다.
`맹수와 마주쳤을 때 절대로 등을 보이지 마라.'
이씨가 경험이 적은 사육사이거나 일반인이었다면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등을 돌려 달아나려고 했을 것이다.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맹수를 관리하는 사육사는 적어도 경력 3년이 넘어야 한다.
언제라도 맹수와 맞닥뜨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씨와 호랑이는 눈싸움을 시작했다.
속으로는 털썩 주저앉고 싶을 만큼 겁이 났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문까지의 거리는 약 1m.
천천히 발을 뗐다.
마음 같아서는 성큼성큼 뒷걸음질 치고 싶었지만 기껏 옮긴 발은 불과 20㎝도 못가 멈췄다.
호랑이는 여전히 아무런 몸짓 없이 난데없는 불청객을 보고 있었다.
다시 한걸음.
문은 야속하게도 여전히 먼 곳에 있었다.
게다가 문은 당겨서 열어야 한다.
밀어서 여는 문보다는 시간적으로 훨씬 불리하게 마련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씨는 철창을 등지고 서게 됐다.
온몸은 이미 땀으로 촉촉히 젖어 있었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철창문을 잡았다.
`삐끄덕.'
그때따라 유난히 문여는 소리가 크게 났다.
이씨는 다시 호랑이의 눈치를 살폈다.
호랑이가 아직까지 공격할 기미가 없는 것을 확인한 이씨는 몸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문을 열었다.
왼발을 겨우 복도 쪽으로 내딛은 뒤 마지막으로 오른발까지 빠져나오는 순간 이씨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퓨우' 빠졌다.
이제 살았다는 생각을 하니 동물이 나간 것을 확인하지 않은 동료를 질책하고픈 마음도 나지 않았다.
그저 목숨을 건진 게 다행일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