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3전4기(12)
기사입력 1998년 01월 17일 15시 41분
사육사 이용필씨는 별다른 생각없이 빗자루 등 간단한 청소도구를 들고 동물 아파트로 들어갔다.
방에는 지난 밤 동안 동물들이 저질러 놓은 분비물과 먹다남은 사료 등이 너저분하게 떨어져 있게 마련이다.
평소 하던 대로 구석방부터 하나씩 청소를 해나가던 이씨는 호랑이방에 들어갔다가 화들짝 놀랐다.
분명히 나간 줄 알았던 호랑이 한마리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배를 깔고 누워있는 게 아닌가.
이씨는 순간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하마터면 빗자루를 놓칠 뻔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빗자루는 그 순간 유일한 무기가 아닌가.
놀라기는 호랑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패트롤카나 관람객버스에 있는 사람만 보아왔기 때문이다.
사파리에 있는 사자와 호랑이는 서커스단에 있는 놈들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서커스단의 맹수들은 어려서부터 삶은 고기를 먹어 야성을 잃어버린 데다 조련사들에게 엄청나게 맞고 자라 `사람＝무서운 존재'라는 인식이 머리 속에 불도장처럼 박혀있다.
그러나 사파리의 사자와 호랑이는 글자 그대로 `백수의 왕' 그대로다.
혹시 야성을 잃어버릴까봐 반드시 생고기를 먹이고 싸움을 해도 될 수 있는 대로 말리지 않는다.
관람객들에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줘야 `흥행'이 되기 때문이다.
이씨가 창살을 사이에 두지 않은 상태에서 만난 호랑이는 불행하게도 야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호랑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