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수첩] 박찬호의 '화려한98' 용틀임
기사입력 1998년 01월 16일 15시 31분
아무리 열심히 이론적으로 가르쳐도 안되는 것들이 있다.
어떤 것들은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하고, 어떤 것들은 몸을 부딪쳐 터득하거나 좌절하는 과정을 거친다.
자신감, 경험, 여유로움, 리더십 등.
98년을 시작하는 LA다저스의 선발투수 박찬호의 변신이 눈에 두드러진다.
우선 모든 면에서 자신감이 넘친다.
동료들이나 코칭스태프에게 먼저 농담을 던지고, 마이너리그 후배들의 부러운 눈초리에는 의연히 선배로서 대처하고 있다.
계속되는 학교 생활로 날로 향상되는 영어 구사력은 16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료 대런 드라이포트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었다.
유난히 얼굴에 잦아진 미소도 박찬호를 더욱 여유있는 선수로 보이게 한다.
조금은 억지 섞인, 과장된 자신감을 나타내기 위한 과거의 미소가 아닌 그야말로 밝고 자신있고, 여유있는 웃음과 유머가 그의 주위를 풍요롭게 메우고 있다.
기자들과 만나 스스럼없이 먼저 농담을 던질 정도로 매끄러워지고 있다.
지나치게 동료들을 의식, 자신에게 쏠리던 스포트라이트를 거북해하던 그가 97년 시즌 중반 이후 서서히 자신감이 몸에 밴 새로운 틀로 바뀌어가더니 이제는 진짜 스타급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박찬호를 처음 스카우트하면서 다저스는 그의 잠재력과 강인한 어깨를 믿었고, 실제로 박찬호는 첫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곧바로 메이저리그 진입이라는 신기원을 이뤘다.
그러나 박찬호에게 요구사항은 상당히 많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자신감을 갖고 공격적인 투구를 하라는 조언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3년 이상이 걸렸다.
어떤 훌륭한 코치나 감독도 그에게 항상 따라다니던 경험부족, 자신감 결여라는 딱지를 임의로 떼어줄 수는 없었다.
본인의 피나는 노력과 다저스의 철저하고 서두르지 않는 조련, 팬들의 열화같은 성원과 격려, 마이너 리그에서의 좌절과 그것을 극복한 의지 등이 어울어져 이제는 당당히 개막전 선발을 다투는 대투수로 성장했다.
그리고 타고난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십도 이제 서서히 꿈틀거리며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불의의 부상만 없다면 98년 또 한번의 화려한 시즌을 박찬호에게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LA＝민훈기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