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성의 풍속사] (13)동성애
기사입력 1998년 01월 15일 15시 28분
얼마전 한국에이즈연맹이 국내 동성애자의 수가 11만명으로 추정된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적극적 동성애자 1만명, 한두번의 동성애 경험이 있거나 없더라도 발을 들여놓는 과정중에 있는 소극적 동성애자가 10만명이라고 전해준다.
우리도 동성애에 관한 한 역사가 깊다.
전래의 구비문학에는 미소년의 항문에 성교하는 미동치기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미동(美童)을 친다'니, 표현도 적나라하다. 판소리 가운데 적벽가와 박타령 등에도 항문성교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연구가들에 따르면 보부상이나 사당패거리, 군대같은 특수한 남성집단에서도 동성애가 존재했다고 하며, 심지어 승방에서의 동성애도 구전돼 내려오고 있을 정도다.
남색 비역질 미동치기 따위의 말이 지금도 국어사전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동성애의 존재는 사실(史實)이고 사실(事實)이다.
고려말의 공민왕도 남색을 했던 왕으로 유명하다. 공민왕은 부인 노국공주가 세상을 뜨자 아름다운 소년들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 고려사 세가(世家) 권 제44편에 나오는 얘기다.
공민왕은 노국공주와의 관계로 보면 이성애자요, 소년들과의 관계를 보면 동성애자니 결국 양성애자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신라 화랑들도 동성애를 즐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익이 쓴 `성호사설'을 보면 화랑을 선발할 때 미소년을 자격요건으로 내세웠는데 당시의 남색경향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화랑들의 동성애에 관한 주장을 노골적으로 펼친 사람들은 일본학자들이었다.
1932년 한 일본학자는 "화랑제도의 매우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로 화랑과 낭도간에 동성애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11년 뒤 또다른 일본학자는 "동성애가 신라 화랑 전체의 특성이라기 보다는 동성으로 구성된 집단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통속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삼국유사 제2권에도 동성애자로 의심되는 혜공왕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혜공왕은 서기 765년 8월 아버지 경덕왕이 세상을 뜨자 8세에 왕위를 이어 받았는데 "원래 여자였는데 남자로 잘못 태어나 여자놀이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혜공왕은 여자처럼 행동하다가 780년 4월 신하들에 의해 목숨을 잃는 비운의 왕이 됐다.
요즘의 관점으로 풀이해보면 혜공왕은 동성애적 취향이 있었다는 얘기다.
삼국유사 제2권에는 또 묘정(妙正)이라는 어린 남자에 관한 기록도 나온다. 묘정은 신라 원성대왕(재위 785∼798) 때의 인물로 "관리를 비롯해 당나라의 황제에게서도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상류사회에 남성간의 동성애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