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3전4기(10)
기사입력 1998년 01월 15일 15시 28분
팔철의 포효에 마당쇠는 마치 패자라도 된 듯 절망감을 느꼈다.
그러나 얕은 물은 요란스럽게 소리를 내며 쫄쫄쫄 흐르지만 깊은 물은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흐르는 법.
동물도 마찬가지다.
진짜로 싸움에 자신이 있는 놈은 결코 큰 소리로 상대에게 겁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의 도전을 유혹하기라도 하듯 가만히 있는다.
결국 큰소리를 먼저 치는 놈은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위기를 넘기려는 것이다.
투견대회에서 짖는 개를 패전처리하는 것도 이같은 까닭이다.
팔철도 그랬다.
마당쇠와의 맞대결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욕심 많은 팔철이 암컷을 무려 2마리나 내주며 쌍대와 연합을 하고 있는 것도 언젠가 마당쇠와 싸울 때 수적으로 앞서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런 점에서 팔철의 전략은 그런대로 성공을 거둔 셈이다.
1대2 결투에 부담을 안은 마당쇠가 스스로 꼬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팔철은 더욱 큰소리로 사파리를 호령했다.
`어떤 놈이든지 자신있으면 덤벼라. 나는 사파리의 왕이다.'
팔철이 기고만장한 것과 반비례해서 마당쇠는 코가 석자나 빠져 있었다.
아파트에서 연금생활을 할 때는 사파리에 나가는 날을 팔철의 제삿날로 만들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탓이다.
마당쇠는 복귀 첫날부터 한없는 실망감을 안고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그것은 퇴근한 뒤에 느낀 좌절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바로 이웃사촌인 팔철은 어김없이 암컷 한마리를 끌고들어와 보란듯이 품는 게 아닌가.
마당쇠는 옆방에서 히히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