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터뷰] 이상훈 '찬호보고 나도 할수있다'

기사입력 1998년 01월 12일 14시 00분

하일성위원（이하 하）:좀 착잡하지?

이상훈（이하 이）:정리할 게 많죠. 인사를 다닐 곳도 꽤 있는데 종일 운동하니까 시간이 안나요.

하:영어 공부도 해야지.

이:미국에 계신 분께 물어봤는데 한달간 배우고 오느니, 와서 그냥 부딪치래요. 그게 제 스타일에도 맞고….

하:그래도 예스, 노는 구별해야지.（웃음） 한마디로 물어보자. 자신있느냐?

이:무성의한 대답일지 몰라도, 열심히 할 자신은 있습니다. 꿈의 리그가 도대체 어떤 곳인지 한번 부딪치는 거죠. 자신있게 도전하겠습니다.

하:（박）찬호가 성공하고 나니까 "나도 통하겠다"라고 생각했지?

이:찬호가 용기를 줬죠.

하:공배합과 스타일이 너랑 비슷하지 않니? 공격적이고….

이:던지는 스타일이 비슷하죠, 마음 자세도. 찬호는 좌우폭보다 높낮이의 변화가 많은 피칭이 인상적이에요. 메이저리그적이죠.

하:오히려 찬호가 흔들리는 모습에서 배울 게 많지?

이:한두개 맞으면 위축됐죠. 변화구의 각도가 밋밋해지고.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은 모든 투수가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예요.

하:빠른볼 왼손 투수라면 일본에서 더 잘 통할텐데….

이:사실 스카우트 제의는 일본에서 먼저 있었어요. 제가 신인일 때 주니치가 LG에 제시했더래요. 구단이 알려주지 않아 저는 나중에 들었어요.

하:네 성격이면 （구단에）따졌겠구나.

이:상관없었어요. 어차피 그땐 알았어도 （한국을）뜨지 않았을 거니까. 95년에 미국에서 관심을 보였을 때도 저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어요.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프로 3년밖에 뛰지 않았다면 국내 팬들에게 충분히 보여준 게 아니니까.

하:미국을 고집한 이유가 있니?

이:메이저리그의 스타일이 너무 맘에 들어요. 적극적이고 도전적이고.

하:솔직히 일본은 `데이터 야구'라니까 지레 꼼꼼히 계산하기 싫어서 그러지?

이:그렇죠.（웃음） 전 계산에 신경쓰여서 데이터 야구는 매력 없어요.

하:올해 결정적인 홈런을 많이 맞는다는 평가가 늘었어.

이:조금 억울해요. 제 해석은 제가 이상훈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듣는다는 거예요. 제가 맞은 한방은 다들 너무 크게 기억하거든요. 건방진 얘기지만 `결정적일 때 한방을 잘 맞는' 구원 투수는 1년에 47세이브포인트를 따낼 수 없어요.

하:허리는 이제 괜찮니?

이:척추분리증은 그저 직업병이려니 생각해요. 근육을 키우는 보강 훈련을 열심히 해야죠. 허리는 전혀 상관없이 뛸 자신 있어요.

X마침 찾아온 팬에게 이상훈이 사인을 해줌〉

하:사인은 오른손으로 하네.

이:글씨는 오른손으로 써요.

하:밥은?

이:왼손으로 먹죠.

하:역시 유별나네.（웃음） 한국에서 가장 아쉬웠던 게 뭘까?

이:부상으로 경기에 못나갔을 때, 관중들이 막 환호하는 운동장에 못가고 혼자 TV를 지켜보던 순간 순간이 모두 아쉬워요.

하:머리 때문에 말도 많았지.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와 LG가 맞붙었을 때 누구는 "이상훈이 해태에 갔으면 저렇게 치렁치렁한 머리를 못 길렀다"고 그러더라.

이:맞는 말이죠. 해태 선수였다면 못 길렀죠. 개성을 마음대로 살릴 수 있는 팀에 간 것은 행운이에요.

하:미국에 가서도 기를 거냐?

이:절대 안잘라요. 계약서에도 넣었어요.

하:계약서에도 넣었어? 역시 배짱이 있어. 내가 이상훈을 가장 좋아하는 점이지.

이:떨 때도 있어요.

하:대학교 때 왜 그렇게 도망다녔니? 별명이 `빠삐용'이었잖아.

이:제가 보기보다 예민해요. 감수성이 많아서 감정 기복도 심한 편이고. 가끔 통제가 안될 때가 있죠.

하:집사람은 왜 미국가서 고생해야 하느냐고 안그래?

이:늘 제 결정을 말없이 따라주는 사람이에요. 프로선수 부인으로서 포기할 부문은 확실히 알고 있죠. 모든 일은 제가 결정하는 편이에요.

하:매사에 너무 네 위주인 건 아닐까?

이:남한테 피해는 안줘요.

하:자꾸 틀에서 벗어나면 팀 분위기에 영향이 있잖아?

이:바깥 사람들과는 몰라도 팀 동료와의 관계는 자신있어요. 성격상 모든 사람과 원만하지는 못하죠. 하지만 누구나 모두를 좋아할 순 없잖아요. 그런 것에 신경쓰면 생각만 많아지고 야구에 집중할 수 없어요.

하:마지막으로 국내 팬들에게 한 말씀 남겨야지.

이:팬들은 진짜 잊을 수 없어요.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사람들이 일어서고, 박수치고. 그 환호 소리를 들으면 힘이 불끈 솟는 것같은 희열이 있었어요. 그건 팬들이 제게 준 큰 선물입니다. 그 힘을 받아 제가 더 강하게 던질 수 있었으니까요. 미국에 가면 그런 일이 없겠죠. 이젠 여러분의 응원에 대한 기억이 제게 큰 힘이 될거예요. 고맙습니다.

[정리＝이승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