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7)
기사입력 1998년 01월 10일 13시 43분
"몇척이나 되느냐?"
"대선 두척이 앞에 섰고 뒤를 두척이 따르고 있소이다."
"그럼 네척이란 말이냐?"
"소인은 네척밖에 보지 못했소이다."
안도창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네척이 모두 들어오거든 화전을 쏘라고 일러라."
군사가 구르듯이 내려가자 안도창이 옆에 선 부장을 바라보았다.
"들어오기만 하면 다 된것이야. 대선이라니 좁은 항안에서 뱃머리를 돌릴 수가 없을 것이다."
사방은 먹물 속 같이 어두워서 지척이 분간되지 않았다. 왜선은 조심 하느라고 불을 끈 모양이었다.
"나리, 저 소리가 들리십니까?"
문득 옆에 선 부장이 말했으므로 안도창이 긴장을 했다.
"무슨 소리?"
목을 앞쪽으로 뺀 안도창의 귀에 파도 소리에 섞인 말소리가 들려왔다. 왜말이다.
안도창이 칼자루를 움켜 쥐었다. 왜선이 바짝 다가온 것이다.
"저놈들은 도대체 무얼하고 있는고?"
안도창이 뜬 목소리로 말한 순간이다. 밤하늘에 별똥이 그어지는 것처럼 불덩이 하나가 솟아 오르더니 떨어지면서 바다가 보였다.
거대한 왜선 다섯척이 바로 백보쯤 앞으로 다가와 있는 것이다.
다음순간 양쪽에서 수십개의 불덩이가 쏟아졌으므로 바다는 더욱 환해졌다. 이제는 갑판위의 왜적들도 보였다.
"쏘아라！"
어느덧 칼을 빼든 안도창이 소리쳤고 바로 앞쪽의 군사들도 화전을 쏘았다.
북이 울리면서 군사들의 함성이 어둠을 깨뜨렸다.
"저기 배 한척에 불이 났습니다."
부장이 소리쳤다. 오른쪽 끝에 있던 왜선의 선미에서 불길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쏘아라！"
허공에 칼을 휘두르는 안도창은 더욱 기세를 얻었다. 불에 타 죽든가 아니면 뭍으로 헤어 나와도 이쪽 군사들의 칼에 맞아 죽을 것이다.
"나리！ 배 두척이 곧장 이쪽으로."
군사가 소리치기도 전에 그것을 본 안도창이 눈을 부릅떴다. 대선 두척이 곧장 이쪽으로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배의 양쪽에서 뻗쳐진 십여개의 노가 맹렬하게 저어지고 있었다. 화염을 등에진 두척의 형상이 처절했으므로 안도창은 숨을 죽였다. 마치 죽으려고 뭍으로 뛰어드는 미친 고래와 같다.
"이놈들이."
어깨를 치켜올린 안도창이 칼을 고쳐 쥐었다.
"놈들이 뭍으로 달려든다！ 막아라！"
앞쪽 모래사장에는 이미 군사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배를 모래톱까지 돌진해오는 왜적들의 기세는 예상 밖이었다.
"불을 밝혀라！"
부장이 소리쳤고 이미 이쪽도 왜적을 맞을 채비로 활을 버리고 칼들을 쥐었다.
북이 빠르게 울렸는데 접전을 알리는 것이다.
"접전을 한다."
만척이 옆을 따르는 강쇠에게 말했다.
"왜적들이 곧장 뭍으로 달려든 모양이다."
화전이 올라 온지 얼마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만척은 걸음을 빨리 떼었다.
그들의 뒤로 오십여명의 부하가 따르고 있었는데 정예만을 추린 것이다. 야산 모퉁이를 돌자 화광에 덮인 바다가 환하게 드러났다.
말굽형 해안의 양쪽에서는 아직도 화전이 쏘아지는 중이다. 그러나 해안을 본 만척은 눈을 부릅떴다.
대선 두척이 이미 모래사장위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