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4)

기사입력 1998년 01월 07일 13시 48분

"무엇하러 온다는거냐?"

만척이 묻자 사내는 머리부터 저었다.

"그건 모릅니다. 장군, 다만 고려를 거쳐 몽골땅으로 간다는 것은 알고있소."

"어느 영주의 무장이야?"

"붕고의 아오이 나가마사 휘하에 있는 무장이오. 일본을 떠날때 옆쪽에 정박하고 있었소이다."

"아오이 나가마사라면."

만척이 잠시 먼눈으로 앞쪽을 바라보았다. 윤의충으로부터 들은 기억이 있는 것이다.

그가 보낸 사무라이가 몽골사신 탈무아를 기습했었다. 만척이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이놈을 끌고 산채로 간다."

이쪽의 전상자는 거의 없는 완벽한 승리였지만 야적단이다.

전공(戰功)을 기록해줄 사람도 없는 것이다. 포로로 잡힌 백성들은 풀려나 모두 제집으로 돌아갔고 재물들도 그들 손에 되돌려 졌다.

만척이 산채로 돌아왔을때는 해가 중천에 떠 있을때였다.

"두령님, 보령부사 한테서 전갈이 왔소이다."

청에 앉은 그에게 소두목이 보고했다.

그러자 곧 부하들의 안내를 받아 미복 차림의 장한이 그의 앞으로 다가와 섰는데 낯익은 별초군의 교위였다.

"두령, 오랜만에 뵙소이다."

그가 예를 보이자 만척이 머리를 끄덕였다.

"자네가 갑자기 웬일인가?"

"부사나리 심부름을 왔소이다."

한걸음 다가선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오늘 새벽에 장명포에 상륙했던 왜구를 토벌하셨지 않소이까?"

"왜? 보령부사가 강화섬의 왕씨한테 내전공을 올리기라도 하겠단 말인가?"

"저희들이 왜구 수급을 모두 떼었소이다."

"허어, 대공을 세웠구나."

턱을 든 만척이 입을 벌리고는 소리없이 웃었다. 보령부사 휘하의 별초군이 죽은 왜구들의 시체에서 목을 떼었다는 것이다.

부사는 왜구들의 목을 강화로 보내 자신의 전공으로 삼을 것이다. 교위가 주위를 둘러 보았다.

"두령께서 왜구 한놈을 산채로 잡았다고 들었소이다. 그놈을 넘겨주시면 부사께선 신세를 잊지 않겠다고 하셨소."

"조금전에 죽여 묻었어."

자르듯 말한 만척이 교위를 쏘아보았다.

"부사한테 오늘밤 쌀 백석을 천마산 골짜기로 가져다 놓으라고 하게. 요즘 산채에 양곡이 떨어졌어."

"그렇게 전하리다."

"그리고 오늘밤 장명포에 왜선 다섯척이 닿을거야. 부사가 이번에야말로 대공을 세울 기회가 왔어."

"오늘밤에 말씀이오?"

교위가 눈을 크게 떴다.

"왜선이 다섯척 이랍시면 왜적은 수백명이 되겠소이다."

"기습하면 그 반수로도 이길수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진실로 대공(大功)이지."

"틀림 없겠지요?"

"내가 언제 실없는 소리 하던가?"

교위가 허겁지겁 사라지자 만척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전라도 산속에서 화적단 두령 노릇을 한지도 일년이 훨씬 넘었다.

이제 딸린 식구가 삼백여인이오. 인근 고을의 수장과는 서로 거래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으니 기반은 굳은 셈이다.

그는 길게 숨을 뱉었다. 윤의충에 대한 소문은 석달전부터 들어온 것이다.


그는 이제 몽골제국의 정동행성 병마절도사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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