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수첩] '15년 스승' 허샤이저와 박찬호
기사입력 1998년 01월 04일 15시 41분
94년 박찬호가 처음으로 미국에 진출했을 때 LA 다저스의 에이스는 오랄 허샤이저라는 우완 투수였다.
키는 훌쩍 크지만(186㎝) 가냘픈 몸매에, 운동을 하지 않을 때면 동그란 안경을 쓴 선한 모습이 인텔리의 냄새를 풍기는 선수였다.
당시 박찬호가 곧바로 메이저 리그에 진입해 첫 원정을 갔던 세인트루이스의 한 호텔 로비에서 허샤이저와 나눈 이야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찬호가 얼마나 힘든 일에 도전하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말도, 풍습도, 음식도, 모든 것이 틀린 이 땅에서, 특히 메이저 리그에 도전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찬호는 이미 대단한 선수"라고 말했다.
그는 유독 찬호를 아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박찬호의 성공을 장담했었다.
그러나 다저스는 다음 시즌 만 35살이 넘은 그를 투자 가치가 떨어졌다고 냉정하게 트레이드했다.
그런 허샤이저가 98년 시즌에는 다저스의 최대 라이벌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선발 투수로 친정팀 다저스와 대결을 벌인다.
만 40살을 눈앞에 둔 허샤이저는 97년 시즌 클리블랜드에서 14승을 거둬 월드시리즈 진출에 일조를 하고는 자이언츠에 스카우트됐다.
다저스의 예상과는 달리 허샤이저는 마흔이 되도록 여전히 메이저 리그 정상급의 투수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메이저 리그 생활 15년째를 맞는 허샤이저의 영입은 자이언츠에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항상 운동장에 가장 먼저 나타나 훈련에 누구보다 열심인 그는 원만한 대인 관계와 불타는 투혼,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풍부한 경험으로 젊은 선수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어왔다.
하키 선수 출신인 그는 `불독'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일단 마운드에 올라서면 도저히 40이라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승리에의 집념을 과시한다.
철저한 몸관리로 그는 올 시즌 325만달러의 연봉(보너스 25만달러 포함)을 받게되며, 99년에도 같은 액수의 연봉이 보장돼 있다.
98년 시즌 적어도 한번 쯤은 박찬호와 허샤이저가 맞대결을 벌일 확률이 높다.
대선배이자 거의 스승처럼 따르던 허샤이저와 정면 대결을 벌일 박찬호의 심정은 참 미묘할 것이다.
이제 25살이 된 박찬호는 앞으로 15년후에 마흔이 된다.
15년 후의 박찬호도 오늘 마흔인 허샤이저처럼 여전히 메이저 리그에서 인정받는 `마흔살 짜리 현역 투수'가 되어있을까.
그 비결이 있다면 바로 허샤이저의 `철저한 프로 정신'일 것이다.
박찬호가 15년 후에도 오늘처럼 열심히 땀을 흘리고 오로지 목표를 향해 달릴 수 있는 묘책은 프로 정신을 문신처럼 몸과 정신에 새기는 길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