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5)] 천연구장건설 국가가 나서라
기사입력 1997년 06월 27일 14시 30분
"국가대표팀도 잔디구장에서 제대로 연습하지 못한다면 말 다한 것 아닙니까."
축구협회 한 직원의 푸념처럼 경기력 향상의 절대적인 인프라 스트럭처(하부구조)인 잔디구장 확보는 현재 한국의 현실에선 요원(遙遠)하다 못해 절망적이다.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둘째치고 그마저 사용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서울의 천연잔디구장은 잠실 동대문 목동 3개뿐이다.
지방에는 비교적 큰 시(市)마다 하나씩 시민운동장이 있지만 모두 트랙이 깔린 종합운동장으로 순수한 의미의 축구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체육대회 등 각종 행사를 위해 관리되는 것이지 축구대회를 위해서는 거의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축구의 90% 이상이 시멘트보다 딱딱한 인조잔디가 깔린 효창운동장에서 치러진다.
결승전이나 올라가야 서울시에 `구걸'해 천연잔디구장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고교선수의 90% 이상이 졸업때까지 천연잔디 한번 밟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서글픈 현실이다.
인조잔디위에서는 경기력 향상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다. 바닥이 딱딱해 넘어지기 쉽고 운(運)없으면 선수생명에 치명적인 화상이나 골절상을 감수해야 한다.
자연 몸싸움이나 태클기술이 떨어지고 패싱력이나 슈팅력에도 한계가 있다.
정교함보다는 많이 뛰는, 강한 체력만을 요구한다.
한창 기본기를 쌓아야 할 중－고교때 인조잔디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오직 잔재주와 전술훈련만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인조잔디세대'인 청소년대표팀은 기본기와 개인기, `생각하는 축구'에서 세계수준과 월등한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난 83년 축구인들의 환호속에 맨땅을 갈아엎어 인조잔디를 씌운 효창구장이 이제는 한국축구 발전을 후퇴시킨 `주범'이 돼 버렸다.
사실 구장확보문제는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축구협회 권한밖의 일이다.
엄청난 경비가 들뿐아니라 축구장 관리는 대부분 시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잔디 관리인들은 한국잔디가 서로 뿌리가 엉키는 금잔디라 조금만 상해도 그 주변이 모두 죽어버린다는 어려움을 들어 사용마저 규제한다.
그러나 이런 `부적합한' 잔디를 사용하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사철잔디여서 겨울철에도 사용 가능하다. 또 자생력이 강하고 질긴 잔디이거나 여름잔디와 겨울잔디를 섞어 사시사철 운동할 수 있게 만들어 놓는다.
환경에 맞는 잔디를 개발하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뒤 얻은 자연스런 열매다.
결국 문제는 투자다.
그러나 누가 과연 십자가를 짊어질 것인가. 국가가 나서기전에는 아직까지 뚜렷한 대안이 없다.
축구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축구전용구장(포항 광양)을 2개나 지어 프로축구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의 선례를 곰곰이 되새겨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