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세대교체 (11)
기사입력 1997년 06월 27일 14시 30분
바위에 기대 선 채로 곰보살을 째려본 것은 킹콩의 연기력일까, 대권에 대한 투지일까.
곰보살은 킹콩이 치명상에 가까운 큰 부상을 당한 사실을 모르는 채 싸움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퇴근을 한 뒤 아파트에 돌아간 킹콩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벌렁 드러누웠다.
사육사들은 그제야 킹콩의 부상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킹콩을 비롯한 다른 곰과 사자 호랑이 등 사파리의 동물들은 아파트에 돌아가면 곧 식사시간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빨리 밥을 달라'고 시위라도 하듯 어슬렁거린다.
맘모스와 함께 사파리에서 가장 덩치가 큰 킹콩이 밥도 마다하고 누울 정도면 보통일이 아니었다.
밤이 깊어지자 킹콩은 전신마취를 받고 수술에 들어갔다.
X선 촬영 결과 골절로 나타났다.
사육사들은 물론 수의사들도 놀랐다.
이런 상태로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킹콩은 4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킹콩이 사파리에 다시 나타난 것은 4월말이었다.
대권 경쟁을 위한 끝무렵이었다.
가장 강력한 대권후보인 킹콩은 하마터면 다된 밥에 코를 빠뜨릴 뻔한 셈이다.
갑갑한 아파트와 간이방사장을 벗어나 오랜만에 사파리에 출근한 킹콩은 홀가분함과 설렘에 몸이 날을 듯 가벼웠다.
`이제 곰보살만 눕히면 왕이다.'
왕관이 보이고, 그뒤에 예쁜 암곰들이 마치 손짓이라도 하는 듯했다.
중앙무대 진출 5년만에 천하통일을 하는 셈이다.
킹콩은 급한 마음으로 곰보살을 찾았다.
그러나 킹콩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킹콩이 20일 넘도록 사파리를 비운 사이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무대포와 니캉 내캉 형제가 사파리의 적자를 내세우며 새로운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나이는 어리지만 모두 맘모스의 피를 이어받은 타고난 투사였다.
맘모스가 왕위에 있을 때 여기저기 씨앗을 뿌리는 과정에서 생겨난 이들은 배다른 형제였지만 아버지의 비참한 최후를 본 뒤 합종연횡(合從連橫)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