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 카사노바 택시기사 (하)
기사입력 1997년 06월 27일 14시 30분
"동생이 사고를 쳤는데 급히 돈을 융통해 해결하지 않으면 내가 감옥에 들어간다."
"자동차 사고를 냈는데 당장 합의하지 않으면 형사처리된다."
"급히 돈이 필요한데 며칠 뒤에 어음이 결제되니까 그 때 갚겠다."
"나이트클럽 매점 운영권을 갖게 해줄테니 보증금 얼마만 내라"는 식이다.
결혼을 약속한 애인의 부탁에 여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구해다 줬다.
박성호에게 보내는 피해자들의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한때 모가수의 PR매니저로 일한 적이 있는 박성호는 여자를 연예인 단골 업소로 데려가 몇몇 연예인들과 눈인사를 건네도록 해 믿음을 갖게 했다.
또 친구들을 불러 마치 자신이 폭력계 부두목이라도 되는양 으시대며 여자들의 의심을 가시게 했다.
한 여자와의 관계를 끝내는데는 보통 3개월이 걸렸다. 더이상 뜯어낼 게 없다고 판단되면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뒤늦게 박성호의 행방을 수소문하지만 삐삐번호, 핸드폰 번호가 모두 바뀐 뒤. 미친개에게 물린 셈치고 돌아서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이렇게 농락한 여자는 93년부터 지난 5월까지 수십명. 경찰이 직접 만난 사람만도 10여명에 달한다. 수첩에 적혀 있던 60개의 여자 전화번호가운데 피해사실을 확인해준 여성이 절반을 넘었다.
박성호는 직장여성의 경우 경력 3년이상만 주로 노렸다. 돈을 융통하기 쉬운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법적 부인인 미용사는 다른 여자들과는 다른 입장이었다.
95년 혼인신고를 했다는 그녀는 새사람을 만들어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에 내내 참고 지냈다고 한다. 몇달에 한번씩 들어와 마음을 잡겠다며 용서를 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박성호의 이용 대상에 불과했다. 피해자들이 고소하겠다고 나올 때마다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털어놔 간통죄를 우려해 포기하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지난 95년말 노이즈 매니저를 사칭, 캐릭터 제작권을 팔아 사기죄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박성호는 경찰이 체포에 나서자 꼭꼭 숨어버렸다.
도피생활 중에도 여자를 농락하고 등쳐먹기는 계속했다. 체포 현장에서 경찰과 맞부딪친 여성도 이 가운데 한명이다.
박성호를 조사한 형사들은 피해자들의 잘못도 크다고 입을 모았다.
"큰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데 근사한 차를 몰고 다니며 돈을 펑펑 쓰는 모습에 홀딱 반해 눈이 멀어버린 것입니다. 그러고도 신고를 꺼렸어요. 억울하지만 장래를 위해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한 거죠."
박성호는 현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피해여성들은 그를 교도소로 보낼 수는 있으나 그에게 대준 돈은 되찾을 길이 막연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