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의 야구세상] 프로야구의 '브랜드 중독증'
기사입력 1997년 06월 25일 14시 07분
다이아몬드 수백개를 돌려박은 시계, 부잣집 마나님을 위해 만들었다는 몇천만원하는 핸드백,억대를 호가하는 승용차 등.
우리는 이런 것들을 `지위재'라고 부른다.
그 물건을 가짐으로써 효용성 내지는 실용성 이전에 부와 권력이 있음을 강조하는 효과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이들 지위재, 브랜드 제품이다.
가령 괜찮은 신랑감이면 반드시 혼수목록에 들어간다는 롤렉스 시계.
이 시계는 확실히 비싸다.
아마 외국같은 곳에 가면 꽤 지위가 높고 나이든 할머니 할아버지 아니면 이 시계를 찬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괜찮은 신랑감이라고 판정받은 새파란 젊은 남자들이 차고 다니는 시계다.
`전국민 브랜드 중독증'에 걸린 일본에서는 지하철 안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평범한 이들도 차는 시계'가 바로 롤렉스 시계다.
브랜드에 약한 것은 오로지 여자와 어린아이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남자들이 브랜드에 약하다.
그것도 엄청나게 약하다.
원래 브랜드는 허영의 이름이다.
졸부가 돋보이려고 대물린 부자들의 애용품을 비싼 돈주고 사는 것도 좋은 브랜드다.
자신의 안목에 영 자신이 없을때 무조건 비싼 것을 사서 낮은 안목을 들키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정력제와 함께 브랜드라면 역시 사족을 못쓴다.
시계, 양복, 허리띠, 넥타이는 물론이고 요즘은 대중 스포츠의 길을 걷는다는 골프채도 그렇다.
채를 바꾸었더니 잘맞더라로 시작되고 나면 각 브랜드는 돌개바람을 일으키며 잘팔린다.
요즘 우리 야구계에도 브랜드 열풍이 불고 있다.
이른바 미즈노배트 붐이다.
물론 프로선수들에게는 얼마나 잘맞히느냐 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러나 이 미즈노배트에 대해서는 선동열도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이고 한마디로 증명되고 검증된 바가 없는 `브랜드'인 것이다.
프로가 배트타령을 한다면 사실 프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자신에게 익은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나무랄 생각을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야구라는 스포츠를 업으로 삼는 선수로서의 자존심이다.
야구가 한때의 유행과 요행수에 기댈 수 있는 스포츠는 분명히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력을 키우고 정신력을 가다듬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지 결코 배트의 브랜드에 집착할 일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한 야구선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야구는 지성적인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스포츠이다'라고.
미즈노 배트 열풍을 지켜보는 팬의 한사람으로 `야구선수의 지성'으로 돌아가길 요구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