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 카사노바택시기사(상)-여성 수십명 농락
기사입력 1997년 06월 25일 14시 07분
돈에 약한 여자, 주먹깨나 쓰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여자, 잘생긴 남자가 하는 말은 앞뒤 재지 않고 일단 믿고 보는 여자….
이같은 속성이 다분한 여성들만 집중 공략, 몸과 돈을 뺏은 뒤 종적을 감추는 남자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
연예인 매니저, 폭력조직 부두목 등을 사칭하며 수십명의 여성을 농락한 택시기사의 행적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지난달 31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한 다세대주택.
벌건 대낮에 두 남녀가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절정에 이르기 직전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내 참, 이거 뭐야? 이 시간에 올만한 사람 있어?"
"없어요. 잡상인이겠죠 뭐. 그냥 모른 척 해요."
그러나 안에 사람이 있는 걸 다 안다는 듯 초인종은 신경질적으로 계속 울렸다.
"도대체 누구세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지 남자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생각같아서는 욕지거리라도 하고 싶었지만 밖에 있는 사람이 속사정을 알 리 없는 만큼 참는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한 여자의 목소리가 문틈으로 흘러들어왔다.
"적십자사에서 나왔는데요, 회비 3천원만 내주세요."
기가 막혔다.
고작 3천원을 받아가겠다고 5분이 넘게 벨을 눌러댔단 말인가.
남자는 애써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나중에 받아 가세요. 지금은 바빠요."
그러나 여자도 만만치 않았다.
"죄송해요. 동네 한바퀴 다 돌고 다시 오려면 너무 힘들어서요."
달리 도리가 없었다.
"내가 나가 볼테니 자기는 샤워나 해！"
여자가 목욕탕으로 들어간 사이 남자는 옷을 대충 걸치고 현관 문을 열어젖혔다.
순간 3명의 남녀가 후닥닥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그의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적십자사 직원이라고 했던 이들은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형사였다. 여형사 2명, 남자형사 1명.
3년이 넘도록 이어졌던 카사노바 같은 삶에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왜들 이러세요！"
여자는 타월을 허리에 두른채 목욕탕에서 나와 앙칼진 소리를 지르다 형사들이 남자의 등을 떠밀며 문 밖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절규했다.
방금 전까지 결혼을 약속하고 장미빛 청사진을 그리며 넓은 가슴으로 안아주던 남자가 혼인빙자간음및 사기죄 등으로 체포되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