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이대론안된다] '월드컵 만능주의' 환상을 깨라
기사입력 1997년 06월 24일 14시 57분
`한국축구는 벌써 죽었다. 다만 축구협회만이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한국 청소년축구가 브라질에 처참하게 무너진 22일 밤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온 한 축구팬이 절규하듯 내뱉은 말이다.
극단적인 표현일지는 몰라도 현 축구협회의 `불감증'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축구협회는 최근 1년새 부쩍 톤이 높아진 여론의 질타를 받을때마다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는 식의 항변을 해온 게 사실이다.
물론 그 근저에는 `2002년 월드컵 유치'라는 든든한 배경을 깔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2002코리아－재팬 월드컵'의 주역이 될 청소년축구가 50년의 어이없는 스코어를 반복하는 현실에서도 그처럼 당당할 수 있을까.
한국축구가 `쿠칭 쇼크'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이같은 불감증에서 부터 탈피해야 한다.
그리고 그 첫번째 작업은 `환상'을 깨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2002년 월드컵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월드컵 만능주의'의 환상 말이다.
축구협회의 착오는 월드컵 유치와 경기력은 무관하다는 사실을 망각하는데서 비롯되고 있다.
월드컵 유치는 대중적 관심을 끄는 정치적 이슈임에는 틀림없지만 경기력은 과학적이고 장기적인 플랜 아래서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게 `현실'이다.
기반을 다지는 작업은 도외시 한채 국민들의 마음을 부풀리는 데만 신경을 쓰다보니 한국축구는 오늘처럼 대표팀 위주의 `겉멋축구' `전시축구'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다.
축구협회는 월드컵의 주최자가 아니라 월드컵의 소프트웨어, 즉 경기력을 채우는 곳임을 새삼 깨달아야 한다.
축구협회 `불감증'의 또다른 근원은 축구를 알고, 축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전문가 집단의 부재와도 맥을 같이한다.
한국축구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는 한심한 인적구조에서 회장은 위기를 외치는 축구인들의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고, 측근들은 회장을 건설적으로 보좌하기보다 복지부동을 미덕삼아 침묵해온게 현실이다.
생채기가 난 것을 보면서도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불감증'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