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반역 (12)
기사입력 1997년 06월 23일 14시 46분
벌판에는 순식간에 으스스한 정적이 흘렀고 말울음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팽덕이 힐끗 왕창국을 바라보았다. 그의 명령 한마디면 삼면에서 기마군이 짓쳐 들어올 것이다.
눈을 부릅뜬 팽덕이 목소리를 높였다.
"어젯밤 놈을 잡아 두었던 창고가 방화 되었다. 이것은 당신짓이 틀림없어."
그의 목소리가 벌판을 울렸다.
"몽골제국을 능멸한 죄가 얼마나 중한지 아는가? 고려국은 씨도 남지 않게 될것이야！"
그러자 윤의충이 눈을 치켜 떴다.
"건방진놈, 적반하장으로 떠들지 마라！ 네놈들이 먼저 주막에서 아녀자를 희롱했던 것이다. 고려국의 법에 의하여 그놈의 목을 벤것이야！"
날카롭게 소리친 그가 왕창국을 노려보았다.
"어젯밤에는 목사와 나를 죽이려고 군사를 매복시켜 놓았겠다. 그따위 간계에 내가 넘어갈줄 알았더냐?"
그의 말이 끝난 순간 지축을 흔드는 함성과 함께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번쩍 머리를 든 왕창국과 팽덕은 벌판의 좌우에서 일어나는 먼지 구름을 보았다. 대군이다.
윤의충이 다시 때려 붙이듯이 말했다.
"대장군 안석보의 군사가 오는 중이다. 자, 먼저 나하고 일전을 벌이겠느냐? 아니면 없었던 일로 하고 서로 등을 돌릴것이냐?"
얼굴을 굳힌 팽덕이 왕창국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 한마디면 오백의 기마군은 윤의충의 백여기를 짓밟을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혼전속에 안석보의 대군이 뛰어들면 이쪽은 무너진다.
함성이 더욱 가까워졌고 몽골군은 동요를 했다.
말들이 앞발을 들었고 대형이 흐트러졌다. 그러나 고려군 일백기는 한 덩어리가 되어서 이쪽만 향하고 있다.
이윽고 왕창국이 시선을 들어 윤의충을 바라보았다.
"네놈은 결사전을 펼칠 작정이었군."
"그렇다. 그리고 너희들도 몰사 당한다."
"안석보가 네놈한테 붙다니."
소리나게 이를간 왕창국이 말고삐를 채더니 손을 좌우로 크게 저었다.
"속국의 변방에서 피를 뿌릴 가치가 없다."
"우리에게 패한다면 황제는 네목을 뗄테니까."
윤의충이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말머리를 돌린 윤의충이 손을 들자 북이 울렸다. 좌우에서 일어나던 함성이 뚝 그쳤고 말발굽 소리도 멈춰졌다.
윤의충이 허리에 찬 칼을 빼들고는 고려군을 바라보았다.
"야아앗！"
벌판을 울리는 윤의충의 고함소리가 났고 일백여기의 고려군이 일제히 창과 칼을 들어 올리면서 따라 외쳤다.
"야아앗！"
몽골군은 그들의 옆쪽에서 성안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미 기세를 잃은 터라 고려군의 함성을 듣고서도 대응하지 않는다. 윤의충이 왕창국의 등에 대고 소리쳤다.
"어젯밤 왜구가 침탈 했는데도 너희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것도 마땅히 네 황제께 보고하여 형제국으로서 있을법한 일인가를 따져봐야 할일이야！ "
몽골군이 성안으로 들어간 직후에 좌우의 고려군이 다가왔다. 앞장선 장수는 부사 김기천과 휘하의 진장들이다.
윤의충이 다가선 그들을 둘러보았다.
"예상대로 놈들은 접전을 피하고 물러갔다. 허나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장군 안석보의 군사가 아닌것이다. 안석보는 지금 영문을 모른채 군사들과 함께 바닷가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