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반역 (11)
기사입력 1997년 06월 22일 16시 43분
"저기 옵니다. 장군."
팽덕이 손을 들어 가리켰지만 왕창국은 이미 그쪽을 보고 있었다.
진주성 남문밖의 벌판에 도열한 오백여기의 몽골군 앞으로 일단의 기마군이 달려오는 중이었다. 사시무렵, 청명한 하늘에 바람한점 없는 날이다.
기마군이 일으킨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 오르고 있었다.
"백기 정도는 되겠습니다."
말고삐를 움켜쥔 팽덕이 왕창국을 바라 보았다. 긴장한 얼굴이었다.
전장에 익숙한 그의 말이 코를 불고 앞발로 땅을 긁었다.
달려오는 기마군은 방호사 윤의충의 군사들이다.
이윽고 붉은색 깃발을 펄럭이는 두명의 기수가 보였고 그뒤를 일진의 기마군이 횡대로 달려오고 있었다.
"제법이군요. 놈들은 금국의 기마전법을 씁니다."
뒤쪽의 대형을 바라보던 팽덕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선봉과 두개의 본진으로 이뤄졌습니다."
왕창국이 뒤쪽의 백인장을 바라보았다.
"벌려라."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던 백인장이 손을 휘젓자 이쪽의 기마군이 일제히 움직였다.
양쪽 끝의 대형이 좁혀지면서 중심부분에 예비대가 증원되었다.
천하를 기마로 정복한 몽골군단이다.
수만리 밖의 서역인들도 몽골제국의 기마군 앞에서는 모조리 괘멸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윤의충의 고려군은 일직선으로 달려왔다. 속력을 줄이지도 않은채 곧장 이쪽을 향하고 있었고 이미 선봉은 여덟팔（八）자 대형의 안쪽으로 들어와 있다.
"장군."
팽덕이 말고삐를 채어 그의 옆으로 바짝 다가와 섰다.
"기세가 사납습니다."
돌격대형인 것이다. 송곳처럼 적의 본진을 찌르는 여진족의 전통적인 전술이었다.
여진족도 말을 잘탔고 기마전술에 능했는데 소수로 다수의 적을 칠때는 이 방법이 가장 적절했다.
이맛살을 찌푸린 왕창국이 막 입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윤의충의 기마군 쪽에서 짧은 북소리가 들리더니 속력이 늦춰졌다.
앞장선 기수가 깃발을 똑바로 세우더니 이제는 속보로 달려온다.
"훈련이 잘 되었다."
혼잣소리처럼 말한 왕창국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바닷가에 나가있는 윤의충에게 연락을 해서 남문밖의 벌판을 만날 장소로 정했던 것이다.
윤의충이 기마군 사이에서 나타나 다가왔다. 주위를 덮었던 먼지가 가라앉았고 기마군은 멈춰섰다.
왕창국도 그에게로 다가갔다.
"방호사, 진주목의 기마군이 훌륭하오."
다섯보쯤 사이를 두고 멈춰선 왕창국이 소리치듯 말하자 윤의충이 빙긋 웃었다.
"겨우 백여기 정도이니 기마군이라고 볼수도 없습니다. 왜구를 쫓는데나 소용이 있지요."
"제법 진용을 만드는구려."
"대국의 흉내를 내보았소이다."
팽덕이 말을 몰아 왕창국의 옆에 섰다.
"왜구는 쫓으셨소?"
"겨우 몰아내었소이다."
"그렇다면 어젯밤에 방호사 휘하의 진장이 몽골군을 벤것에 대해서 법도를 시행하겠소."
그러자 윤의충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법도를 시행하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몽골군 하나가 살해당하면 상대방은 열명이 죽어야 하오. 이것이 황제폐하께서 내리신 법도요."
윤의충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이쪽은 몽골군에 포위당한 상황이었다.
말고삐를 당긴 그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시행하여 보시오. 장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