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불타는 포항 (8)

기사입력 1997년 06월 22일 16시 43분

`비젼 21'. 박회장이 잠시 눈을 감았다.

외롭고 힘들던 도쿄시절, 방문하고 싶어도 청와대 눈치가 무서워 접근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

그 가운데 도쿄까지 찾아와 얼굴을 표지에 실어주고 특집까지 만들었던 주간지！

박회장이 눈을 떴다. 입에 미소가 가득했다.

"이종민 기자? 말해요."

"먼저 회장님의 귀국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혹 이번 대선에 출마하실 계획은 없으신지요."

"지금으로서는 출마할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습니다. 만일 이번 보선에 당선되면 역시 그때 결정할 일입니다."

"현 정권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하십니까."

"글쎄요. 워낙 오래 외국에 가 있어서요. 하지만… 뭐 여러분이나 나나 생각은 똑같지 않겠습니까."

"회장님께서는 이번 대선에 누가 당선 되리라고 보시는지요."

"허허… 그거야 하늘이나 아는 일이죠. 아마 당선될 대통령 자신도 모르고 있지 않겠습니까?"

와아.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갑자기 긴장감이 감돌았다.

"저는 아니라는 겁니다."

기자회견장이 폭소로 뒤덮였다.

근엄하기로 정평이 난 박회장이 계속 조크를 던져 댔기 때문이다.

"두가지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포항 일각에서는 회장님이 포항을 위해 한 일이 없으시다는 평도 나돌고 있는데…."

"허허허… 작은 일은 못했죠. 하지만 작은 어촌이 될 포항을 공업도시로 만들었고, 외국에서도 포항은 다 압니다. 한국에서 서울, 부산 그리고 포항은 다압니다. 우리 국민들도 어디 그냥 포항이라고 합니까. 포항제철이 있는 포항이라고 하죠."

"다음 마지막 질문입니다. 포항 노동계에서 만일 포항제철이 근로자들 때문에 성공했지 박회장 때문에 성공한게 아니라면 뭐라고 대답 하시겠습니까."

"근로자들 공로를 어찌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한보철강은 근로자들이 잘못해서 망했습니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경영 자체가 부실하면 실패합니다. 전쟁을 생각해 보세요. 사병들이 아무리 열심히 전투해도 지휘관이 작전을 잘못짜면 전멸합니다."

대답이 거침없이 나왔다.

그리고 그 답은 명답이었다. 국민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정치를 잘못하면 나라꼴이 우습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다.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그보다는 이번 보권선거에서 내가 꼭 당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금융실명제에 대한 견해는."

"회장님 자신은 보수세력입니까."

"보수라기 보다는 경제 제1주의라고나 할까요. 민주도 통일도 경제 아니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