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의야구세상] 자신을 이긴 선동열
기사입력 1997년 06월 19일 14시 54분
선동열의 인터뷰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일본에서 선동열이 보낸 작년 1년은 아마 그의 일생 가운데 가장 긴 1년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지난 1년은 아이를 낳느라 일종의 정체시기였다.
대개의 스케줄을 줄이고 내가 했던 일은 라디오 방송의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이었다.
그 프로그램 가운데는 약방의 감초격으로 스포츠화제가 들어가 있었다.
그 코너를 맡은 분은 스포츠 모든 방면에 조예가 깊은 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분이 야구광이었다는데 있다.
다른 스포츠화제도 많건만 언제나 그분의 헤드라인은 야구였다.
나 역시 야구에 꽤 재미를 느끼고 있어 그 코너를 언제나 기다리곤 했다.
특히 작년에는 우리의 자랑스런 국보급 수출선수 선동열의 일본진출이 화제였다.
더욱이 나는 일본에서 KBS 특파원을 하며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선동열의 선전을 바랐다.
일본의 야구판은 한국계가 두각을 나타낸 곳이기도 하다.
스포츠와 연예계 등은 대개 차별과 억압을 이긴 강한자들이 승부하는 곳이다.
재일동포들이 야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리모토로 불렸던 장훈을 비롯, 최고 투수라는 가네다（김정일） 등 상당히 많은 한국계선수들이 있었고 지금도 한국계선수들의 활약이 뛰어나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선동열의 진출은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상표를 정식으로 붙이고 수출됐다는 점에서 참으로 뿌듯했다.
그런데 온 일본열도를 깜짝 뒤집어 놓을 줄 알았던 선동열이 영 신통치가 않았다.
신통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영 가망이 없어 보였다.
내가 진행하던 시사프로그램의 스포츠코너에서 나는 언제나 "오늘 선동열은 잘 던졌나요?"를 물어보았다.
그때마다 나는 가슴아픈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아무래도 선동열은 끝난 것 같습니다. 영 재기할수 없을 걸로 보입니다"라는-.
그런데 이 이야기는 실은 내 이야기로 들렸다.
나는 아이를 임신해 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일에 대해 엄청난 욕심을 지닌 나는 때로는 세상이 나를 잊지 않을까, 이렇게 책만 읽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라디오 방송만 하다 나의 승부근성을 잃지는 않을까하고 아주 예민한 상태에서 걱정을 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기도 했다.
아주 많은 여성들이 출산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고통스런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겪으면서 한발후퇴가 두발 전진이라는 삶이 주는 교훈을 발견했다.
나는 더 씩씩해 졌고 아이를 낳은 뒤 더욱 더 미친듯이 일하고 모든것이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얼마전 선동열의 인터뷰에서 이런말을 했다.
"야구에서 중요한 것은 승부 그 자체가 아니고 훈련량도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 어떻게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설득하느냐"라고_.
이말은 나를 감동시켰다.
재기를 위한 고통스러운 1년을 보낸 선동열이 올시즌 펄펄나는 것도 승부에 대해 그만큼 초연해지고 또 성숙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