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세대교체 (4)
기사입력 1997년 06월 19일 14시 30분
5년전 당시로는 신입생이던 킹콩의 군기를 잡으려다 오히려 죽지 않을 만큼 얻어맞고 병원에 입원했던 시커먼스로서는 화려한 복수극을 펼치는 셈이다.
시커먼스는 마치 체조선수처럼 킹콩의 주먹이 그리는 궤도를 살짝살짝 피하며 불꽃 펀치를 날렸다.
킹콩은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날 만큼 흥분했다.
얼굴의 상처도 아프지만 단 한대도 맞지 않는 시커먼스가 얄미웠기 때문이다.
판정으로 승부가 난다면 당연히 시커먼스가 판정승을 거둘 경기였다.
그러나 비록 예선이라도 왕위 결정전을 위한 승부에는 판정승이 없다.
판정패로 질 패자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사육사들이 패트롤카를 몰고와 싸움을 중단시키는 일은 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무승부일 뿐이다.
그러나 패트롤카도 왕위 결정전 때는 승부가 날 때까지 지켜본다.
사파리 서열을 정해야 하는 까닭이다.
어느 한쪽이 치명상을 입고 더이상의 싸움이 무의미하다고 판단될 때 비로소 싸움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공원을 방출시킨 다음 시커먼스의 득세를 점쳤던 사육사들은 그렇지 않아도 킹콩과 시커먼스의 대결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는 이들의 싸움에서 이긴 쪽이 97 대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에 먼저 오를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육사들은 당초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로 킹콩을 꼽고 있었기에 예선전이나 다름없는 시커먼스와의 대결에서는 킹콩이 쉽게 이길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시커먼스가 압도적으로 앞서는 게 아닌가.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채점에서만 앞설 뿐이었다.
시커먼스의 현란한 공격은 계속됐다.
시커먼스는 자신의 소나기 펀치에 킹콩이 큰 상처를 입지 않자 조바심이 생겼다.
조무래기들 같았으면 벌써 쓰러졌거나 꼬리 빠지게 도망갔을 터인데 덩치가 남산만한 킹콩은 피만 흘릴 뿐 여전히 바람소리를 내며 주먹을 휘두르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시커먼스는 주먹으로는 승부가 나지 않겠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또다른 특기인 날카로운 송곳니로 가슴을 물어뜯는 쪽으로 전술을 바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