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의ML메세지] '테트리스'로 선발 긴장 풀어
기사입력 1997년 06월 17일 14시 31분
박찬호 메이저리그 메시지
나는 5일에 한번씩 공포감에 떤다.
바로 선발 등판하는 날은 어김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엄습해 온다.
물론 작년 중간 계투요원으로 뛸 때보다는 등판일을 미리 알기 때문에 조바심은 덜 하지만 부담감이 얼마나 강하게 어깨를 짓누르는지 나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을때가 많다.
그런 초조함이나 긴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별일을 다하는데 별 효과가 없다.
선발 등판하는 날 나는 오전 11시 정도까지 푹 잠을 잔다.
다른 날도 그렇지만 등판 전날은 최소한 10∼11시간 잠을 잔다.
일어나서 씻고 식사를 하면 오후 1시 정도가 된다.
밥은 사먹기도 하고 집에서 먹기도 한다.
식사 후 다시 집에서 1시간 정도 잠을 청한다.
쉬다가 운동장에 도착하는 것이 오후 4시경.
다른 동료들은 이미 훈련과 준비에 열심이지만 등판일을 맞은 선발 투수는 예외다.
등판일에는 타격 훈련도 하지 않는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제일 먼저 트레이닝 룸으로 가서 필요한 비타민을 먹는다.
그리고 나서는 클럽하우스에서 오락 게임을 한다.
요즘은 주로 테트리스를 하는데 경기 시작 1시간10분전까지는 오락 게임을 하거나 책을 보면서 기분을 가볍게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후 운동장에 나가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후 달리기를 한다.
약 50m 거리를 10번 정도 대략 70％ 스피드로 왕복한다.
우리 팀 투수들중 달리기를 하는 것은 나와 노모뿐인데 한국에서의 습관 때문인지 경기 전 뛰어야 안심이 된다.
몸이 더워지면 다시 라커룸으로 들어가 테트리스를 하다가 40분을 남기고 트레이닝룸으로 간다.
트레이너 패트 스크리너가 오른쪽 어깨와 팔꿈치 등을 속근육부터 완전히 풀어 이완시켜준다.
그리고는 불펜으로 가서 다리와 허리 등 다른 부분 스트레치를 한 후 불펜 피칭에 들어간다.
통상 40∼50개 정도 던지는데 마지막 5개 정도만 전력 투구를 한다.
불펜 피칭이 끝나면 클럽하우스로 돌아가 내의를 갈아입는 것으로 준비는 끝난다.
준비를 끝내고 덕아웃으로 나가면 약 5분 정도의 시간이 남고 국가 연주가 끝나면 경기에 들어간다.
나는 항상 이같은 절차를 가능한한 똑같이 반복한다.
경기가 끝난 뒤 15분 정도 팔에 아이싱을 하는 것도 항상 똑같다.
끊임없는 평소의 훈련에 비해 선발 당일은 오히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정신적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이겨내고 자신감을 다지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가급적 누구하고도 말을 하지 않고 게임이나 책읽기로 혼자 시간을 보내려는 이유도 경기에만 집중하려는 마음 자세를 다지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는 머릿속으로 항상 "오늘도 꼭 이기고 만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는 `나의 의식'이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한다.
때문에 나는 앞으로 이 습관을 그대로 가져가면 메이저리그에서 10년 넘게 최고의 투수로 뛸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