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반역 (7)

기사입력 1997년 06월 17일 14시 04분


팽덕은 기골이 컸으나 구광의 어깨 높이였다. 그가 주위의 몽골군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술갑을 내고 나가라！"

그는 손가락으로 백인장을 가리켰다.

"그리고 너는 남아라. 이번 사건의 증인이 되어야 할테니까."

구광의 옆에선 현이 몸을 떨었다.

"내가 괜히 당신을 부른 모양이오."

선이가 희롱을 당하자 발빠른 종을 시켜 구광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다.

구광이 칼몸에 묻은 피를 쓰러진 역관의 등판에 닦으며 웃었다.

"여기는 고려땅이여. 그러고 나는 방호사 휘하의 진장이다. 저놈들은 날 어쩌진 못해."

바로 옆에 선 팽덕이 그소리를 못들었을리가 없다. 그가 눈을 부릅떴다.

"내, 너를 알지. 개경 황판의 마름이었던 자로 이름이 구광이다. 그렇지 않느냐?"

"지금은 진주목의 진장이다."

구광이 어깨를 부풀렸다.

"옛날일은 다 잊었다. 그러고 다 모른다."

"몽골군을 죽였으니 나하고 진으로 가자. 진주목사와 방호사도 부를터이니 그때 해명을 해라."

구광이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었다.

"좋다. 가자. 내가 겁을 낼것 같으냐?"

이제는 사리분별을 하는 구광이다.

예전만 같았어도 닥치는대로 베고 부수고는 도망쳤겠지만 지금 그랬다가는 윤의충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다.

윤의충이 그 소식을 들은것은 자시가 되어갈 때였다. 바닷가에 나와있던 그는 눈을 치켜떴다.

"그놈이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

소식을 전한것은 구광을 따라 나섰던 교위 황방이다. 그가 허덕이며 말했다.

"장군, 진장은 지금쯤 성안의 몽골군 진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윤의충의 옆에선 김기천이 입을 열었다.

"놈들이 놓아줄것 같지는 않소이다. 아마 크게 문제를 삼을것 같습니다."

"특히 내 부하이니 잘 되었다 하겠지."

"그자리에서 참하지 않은걸 보아도 그렇소이다."

"그랬다면 몽골군과의 전투가 될터이니 구광이도 자제를 했을거요."

윤의충은 몸을 날려 말에 올랐다.

해안의 순시를 김기천에게 맡긴 그가 십여기의 기마군을 이끌고 성앞에 다가갔을 때였다.

어두운 앞쪽에서 달려오는 한필의 말이 보였다. 그들은 순식간에 가까워 졌는데 서로 말고삐를 채면서 멈춰섰다.

그순간 윤의충이 눈을 크게 떴다.

기수는 목사의 딸 안화옥이었다.

"장군을 찾아가는 길이었어요."

안화옥이 서두르듯 말했으므로 그가 말을 바짝 붙였다.

"무슨 일이오?"

"진장 구광이 몽골군 진영에 잡혀간것 들으셨지요?"

"그일 때문에 오는 길이오."

"지금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우선 관저에 들렀다가 몽골군 진영으로."

"가시면 안됩니다."

자르듯 말한 그녀가 목소리를 낮췄다.

"아버님께도 왕창국으로 부터 오시라는 전갈이 왔습니다. 방호사 관저에도 몽골병이 와 있더군요."

"그렇다면 내 관저에 들렀다 오시는 길이오?"

"길이 어긋날까봐 걱정 했는데 다행입니다."

윤의충이 힐끗 뒤쪽에 몰려선 부하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오?"

"몽골군은 오늘밤에 목사와 방호사를 한꺼번에 처단할 기회를 잡은 겁니다."

별빛을 받은 눈을 반짝이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것은 몽골군이 거란족을 상대할때 자주 쓰던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