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반역 (6)
기사입력 1997년 06월 16일 14시 17분
진주성내는 갑자기 들이닥친 이천기의 몽골군과 1천명에 가까운 별초군으로 가득차 흉흉한 분위기였다.
한낮에도 양민들은 바깥 출입을 삼갔으므로 밤이 되자 성안에 나다니는것은 외지에서 온 군사들 뿐이었다.
동문거리도 마찬가지였으나 자매집은 달랐다.
그동안 객청을 늘리고 마방에 객사까지 만들어 놓은 현과 선이 두 고씨 자매는 객청에 가득찬 손님을 맞아 분주했다.
술이 동이째로 날라지고 돼지 두마리가 순식간에 없어졌다. 닷새분 장사를 하룻밤에 해치운 것이다.
"거기 주모, 이리좀 오게."
뒤쪽에서 부르는 소리에 선이 몸을 돌렸다. 몽골인 백인장을 중심으로 모여앉은 자리였다.
"어서 이리로."
그녀에게 말한 사내는 몽골군을 따라다니는 고려인 역관이었다.
선이 다가서자 백인장이 벌쭉 웃었다. 콧수염을 기른 얼굴이 검다.
"술을 더 드릴까요?"
"술보다도 앉아서 술을 따라라."
역관이 턱으로 백인장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이 장군께서 네가 곱다고 하신다."
선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옆에서 술시중은 들지 않소이다."
"여러소리 했다간 목이 떨어진다."
30대 후반쯤의 역관은 몽골인처럼 수염을 길렀는데 듬성듬성 했다. 그가 입술만을 비틀고 웃었다.
"잘 알고 있으렷다. 네년의 목숨쯤은 파리 목숨이라는 것을."
주위는 모두 몽골군 뿐이었으나 분위기를 눈치챈듯 시선이 이쪽으로 모여졌다. 어느새 언니인 현이 다가와 섰다.
"옆에 앉아."
낮게 말한 현이 역관을 향해 웃었다.
"말씀대로 시중을 듭지요. 나으리."
얼굴을 굳힌 선이 자리에 앉자 백인장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떠들썩한 소음이 일어났고 술잔이 비워지는 사이에 백인장의 손이 선의 허리에 둘러졌다.
구광이 자매집에 들어선것은 그로부터 반식경쯤이 지난후였다.
소음으로 가득차 있던 객청은 그가 들어서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전복을 차려입은 그는 구척 장신이었고 허리에 찬 칼자루를 움켜쥐고 있었다.
고려군 진장의 관복이다. 이윽고 발을 뗀 그가 선이 앉은 자리로 다가와 섰다.
"일어나."
눈물이 글썽해진 선이 자리에서 일어났을때 역관이 따라 몸을 일으켰다.
"진장, 당신이 왜 술자리를 깨는가?"
도전하는듯한 말투였고 머리를 돌린 그가 주위의 몽골군에게 빠른 몽골말로 상황을 설명했다.
백인장이 주먹으로 식탁을 치자 술잔이 떨어져 깨졌다. 그 순간이다.
허리춤에 찬 칼을 선뜻 빼든 구광이 그길로 역관의 목을 쳤고 목없는 몸뚱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피를 뒤집어쓴 백인장이 벌떡 일어섰다. 주위의 몽골군이 일제히 일어서 칼을 뽑아 들었을때였다.
"멈춰라！"
객청의 입구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일순 움직임을 멈춘 그들이 시선만을 그쪽으로 돌렸다.
몽골군 천인장이 들어서고 있었다. 왕창국의 다음가는 장수로 부장 팽덕이다. 모두 칼을 내렸고 팽덕은 구광의 앞에와 섰다.
"진장이 군사를 끌고 달려가길래 뒤쫓아 왔더니 이꼴이군."
그는 능숙한 고려말을 했다. 그가 역관의 시체를 내려다 보았다.
"우리보다 배반한 동족이 더 미운 모양이지? 먼저 벤것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