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자들] 등산-낚시 '붐'
기사입력 1997년 06월 16일 14시 17분
한때 잘 나가던 중견기업의 간부였던 박모씨（45．서울 관악구 신림동）.
지난해 말 주위의 압력을 못 이기고 명퇴를 당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고개를 떨군 채 인적이 뜸한 곳만 찾아다니기를 6개월.
하지만 경기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최근의 언론보도 이후 박씨는 활기를 되찾고 있다.
남산공원이나 북악스카이웨이를 찾아 낮잠으로 시간을 보내는 대신 서울 근교의 산이나 강으로 등산, 낚시를 하러 다니며 재기 구상에 여념이 없다는 것.
최근 명퇴자들 사이에 등산과 낚시 붐이 일고 있다.
이대로 남은 인생을 흘려 보낼 수 없다는 인식이 명퇴자들 사이에 확산되며 떳떳하게 산과 강을 찾아 재기구상과 함께 심신을 단련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는 것.
최근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등지에는 평일에도 등산으로 체력을 가꾸는 40∼50대의 중년 등산객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북한산 관리사무소의 이평규계장（47）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중년의 등산객들이 배 이상 증가했다"며 "특히 평일에도 혼자서 등산을 즐기는 남성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들의 모습은 과거 양복차림으로 산 주위를 배회하던 명퇴자들과는 차이가 있다.
간편한 등산복 차림을 하고 산을 오르기 때문에 주위로부터 실업자나 명퇴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받지 않는다.
또한 사람이 뜸한 적당한 곳을 찾아 시간을 보내던 것에서 벗어나 힘들여 정상을 밟는 것은 물론 하산하는 길에는 시원한 계곡에 들러 명상하거나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과 사업정보를 교환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고.
날씨가 더워지면서 물가로 나와 낚시를 통해 마음을 가다듬는 명퇴자들도 많다.
한강의 낚시 포인트로 알려진 워커힐호텔 아래의 강변이나 반포의 인공섬에는 평일에도 강태공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낚시줄을 드리우고 있으며 서울 외곽의 낚시터들도 몰려드는 신입（?）낚시꾼들로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고.
경기도 의정부에서 낚시터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40）는 "지난해에는 평일에 낚시를 즐기는 사람이 10명 안팎이었으나 요즘에는 30∼40명에 이르고 있다"며 "혼자 자동차를 몰고 오는 중년신사들이 전체 손님의 50％ 정도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이곳을 찾은 김모씨（48．서울 은평구 불광동）는 "직장을 그만둔 뒤 술자리를 전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며 "하지만 최근 경기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사업구상을 위해 낚시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