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내 방망이의 힘은 헬멧서 나온다'
기사입력 1997년 06월 15일 15시 04분
OB `악바리' 이정훈（34）의 헬멧은 지나치게 작다.
썼다라기 보다는 그냥 `걸쳤다'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다.
보기에 영 이상하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이정훈이 이 작은 헬멧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지난 91년과 92년 빙그레시절（현 한화） 타격왕을 차지할때 쓰던 헬멧이기 때문이다.
안이 다 헤질 정도로 낡았지만 그만큼 의미있는 `골동품'.
3년동안 집에 보관해뒀다 작년말 OB로 이적한뒤부터 칠을 새로 해 다시 사용하고 있다.
마지막 야구인생을 화려하게 꽃피우겠다는 이정훈의 집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정훈은 올시즌 기대만큼의 성적을 못 올리고 있다.
14일 현재 34경기에서 타율 2할1푼6리（97타수 21안타） 10타점.
하지만 고질적인 오른쪽 발목부상을 딛고 출전한 최근 5경기에서 16타수 6안타（0.375）의 투혼을 불사르고 있다.
13일 잠실 한화전에서도 3회 우전안타로 결승타점을 올렸고 8회에는 우측펜스 상단을 때리는 큼지막한 2루타를 터뜨렸다.
맞아나간 공들은 하나같이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빨랫줄 타구들.
3회 1루주자로 나갔을때의 베이스러닝도 인상적이었다.
3번 김상호의 좌중간 2루타가 나오자 전력질주로 2, 3루를 돌아 홈에서 과감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흙먼지를 일으켰다.
주심의 세이프판정에 "휴∼"하고 기다란 한숨을 내쉰 이정훈.
덕아웃에 앉아있던 OB 선수들의 커다란 박수세례는 바로 노장의 건재함을 알리는 선포식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