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불타는 포항 (1)
기사입력 1997년 06월 14일 13시 56분
드디어 김현철이 구속되었다.
검찰에서 2차소환했을 때만 해도 그는 자신의 구속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야당생활을 할 때 김현철은 대단히 어려운 생활을 했다.
지난날 고초를 보상이라도 받으려는듯 그는 정재계를 휘돌며 자신의 힘을 길러왔다.
그동안 일부 언론의 추적도 있었지만 워낙 `잠수함'처럼 잠행하여 꼬리가 잡히지 않았다.
`안기부법, 노동법' 날치기 사건이 `한보 부정대출' 사건으로, 이것이 다시 박경식의 테이프 공개로 `김현철'까지 불이 붙게 되었다.'
"나는 잘못한게 없다. 종교에 걸고 맹세하겠다. 그동안 생활비는 할아버지가 대주었고, 한달에 200만원 정도 생활비를 쓰고 있다."
청문회에서 밝힌 내용이다.
하지만 이렇게 덮는다고 해서 그가 밟아온 행적이 덮어지는건 아니다.
시중에는 별 희한한 소문이 다 떠돌고 있었다.
"미국에 막대한 자금을 감춰두었다."
"92대선 때 쓰고남은 자금을 은닉하고 있다."
"부산시장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을 하겠다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마련했었다."
검찰은 100억∼200억원 정도 비자금을 확인하고 있었고, 이중 절반은 92대선때 사조직으로 활용하던 `나사본'에서 유입되었고 나머지는 우성, 신성, 한솔, 대동, 두양, 대호 같은 기업체에서 활동비로 받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종교의 이름으로 맹세했던 결백이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청문회 직전 `기도'를 하고 나왔다던 말도 거짓말이 되었다.
종교나 신(神)은 그렇게 함부로 부르는게 아니다.
언젠가 검찰이 이 내막을 발표하겠지만 국민들은 쉽게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더 많은 재산이 감춰져 있을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설혹 검찰이 모든 것을 진실되게 발표한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미 여러번 속아왔기 때문이며 또 뒤에 더 큰 의혹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완전히 등을 돌려 버렸다.
중앙과 지방의 주요 기업체들이 무너지기 시작한지 오래 되었고 실업자는 늘어만 갔다.
정치인과 행정 책임자들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고 답답한 국민들은 욕지거리만 퍼붓고 다녔다.
특히 거리의 택시기사 아저씨들의 분노는 하늘로 치솟았다.
"우리같은 놈은 평생 먹고살기도 힘들어. 이게 뭐야."
"서민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아."
"장사 안된다고 난리야.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어떤놈 말 한마디면 억대가 왔다갔다하는데."
정부와 정치인 국민들이 모두 따로 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