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반역 (3)
기사입력 1997년 06월 13일 14시 03분
흑적이 진주목에 들어선 것은 오시 무렵이다.
목사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안재연이 그를 맞았으나 예를 표하지는 않았다.
"먼길에 수고 하셨소이다."
말에서 내린 흑적은 불쾌한 표정이었다.
그는 몽골의 병부시랑으로 황제의 사신이다. 고려왕도 강화섬 입구까지 나와 맞아주었던 것이다.
"목사께선 황제의 사신을 홀대하고 있소."
굵은 목소리로 말한 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진주목의 관리 십여명이 나와 있었는데 모두 제 상전을 닮아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있다.
"이것이 대몽골 제국의 사신을 맞는 예의란 말인가?"
그의 뒤에선 은홍은 잠자코 있었지만 왕창국이 한걸음 나섰다. 그는 개경에 주둔한 몽골군의 사령관으로 기마군 이천을 끌고 따라온 참이었다.
"무엄하다. 감히 목사 주제에 대국의 사신을 능멸하다니."
목사청 앞은 순식간에 살벌한 분위기로 바뀌어졌다.
왕창국은 당장에라도 칼을 뽑을 기세였고 뒤쪽의 부하들도 긴장을 했다. 그러나 안재연은 눈썹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허어, 이런 변이 있나?"
그가 왕창국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진주목사겸 경상도 안찰사로 고려국 정3품의 대신이다. 너는 몽골국의 무덕장군으로 정5품의 벼슬이야."
그가 소리치듯 말하자 옆에선 판관도 목소리를 높여 통역을 했다. 안재연이 흑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왕께서 사신을 그만한 예로 맞았으면 그것으로 된것이야. 고려는 몽골의 속국이 아니니 내가 당신에게 예를 갖출 필요는 없다."
"이런 무도한."
왕창국이 칼자루를 움켜 쥐었을때 은홍이 나섰다. 그는 몽골의 예부시랑이다.
"대감의 명성은 전부터 듣고 있었소이다. 이거 만나자마자 다투어서야 되겠소?"
왜소한 체구의 그는 흑적과는 성격도 대조적인것 같았다. 그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본의 아니게 서로 언성을 높인것 같소. 이제 들어 가십시다."
"사신이 타국의 지방을 돌아다니며 지방수령을 턱끝으로 부릴수는 없소이다."
뱉듯이 말한 안재연이 목을 돌렸다. 분을 삭이지 못한 왕창국이 이를 갈았고 흑적은 눈을 부릅떴다.
이런 대접은 상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홍이 눈짓을 하자 그들은 마지못해 목사판 안으로 따라 들어섰다.
왕창국의 기마군은 목사관 앞에 세워 두었으므로 말울음 소리와 함께 병사들의 떠들썩한 소음이 일어나고 있었다.
청안에 자리잡고 앉은 흑적이 앞쪽의 안재연을 쏘아보았다.
"고려국은 타국이 아니오. 몽골제국과 형제의 의를 맺은 형제국이오. 목사께선 명심하시오."
말이 형제국이지 원종은 이미 쿠빌라이에게 복속을 약속한 처지였고 그것을 모르는 안재연이 아니다. 그러나 안재연이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나는 아직 그말을 들은적이 없소이다. 강화를 떠난지가 오래된 때문인 모양이오."
"백성을 도탄에서 구하려는 고려왕의 뜻이었소. 도발하지 마시오."
자르듯 말한 흑적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호사 윤의충은 왜 나오지 않았소?"
그때였다. 목사관 안으로 세필의 말이 들어서더니 곧장 청앞으로 다가왔다.
앞장선 기수는 방호사 윤의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