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골사람들] 50년대 문인들의 '낭만에 대하여'
기사입력 1997년 06월 11일 14시 40분
`술집에서 내가 거푸 막걸리 몇사발을 들이켜곤 미당(서정주)의 시를 줄줄 외워대자, 미당도 여간 좋아하지 않았다. "내 새끼, 내 새끼"하며, 내 두볼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 끌어다가 입을 쪽쪽 맞추는데, 놀랍게도 당신의 혓바닥까지 내 입안으로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노크를 하고 문을 열자, 모윤숙여사는 "응, 어서 들어와요. 난 그냥 이렇게 누워있을게, 양해들 하라구" 하고 그냥 베개에다 가슴을 대고 엎드려있었다. 내가 술이 얼근한 김에 "어때요, 제가 안마좀 해드릴까?"하자, 모여사는 "좋지, 고향 젊은이에게 안마 한번 받아보자꾸나" 하였다.
나는 그대로 서슴없이 모여사의 파자마 입으신 엉덩이를 타고 앉아, 등을 주무르고 두드리면서….'
수십년 세월 저편, 문인들의 모습은 이렇게 여유롭고 호방하다.
소설가 이호철씨(65)가 그려낸 `문단골 사람들'(프리미엄북스)은 우리나라 50년대의 뒷골목 문단사다. 말하자면 뒷골목과 술집을 무대로 한 문인들의 초상.
이씨가 그려내는 문인들의 얼굴은 정겹고, 그립다. 술이 물이라면, 문인들은 물고기. 그러나 그 물고기들도 물 마시던 스타일은 제각각이었다.
아무한테나 막걸리 한잔값 1천원을 얻어 사시사철 마시던 시인 천상병. 언젠가 누가 잡히는대로 두잔값인 2천원을 내밀었다. 천시인은 그자리에서 1천원을 돌려주며 대갈일성, "인마, 경제를 생각해, 경제를！"
취했다 하면 시인 조지훈은 명동 한복판에 네 활개 펴고 눕기 일쑤, 희곡작가 김진수는 온갖 욕설을 퍼부어대며 의자고 뭐고 닥치는대로 집어던지기 일쑤였다.
그런가 하면 당시 여대로서는 유이(唯二)하던 이대와 숙대의 여학생들을 다방에 불러내 `노닐곤' 하던 공초 오상순의 모습은 미소를 자아내게 하고, 한밤중에 일어나 단장의 울음소리를 토해내던 스님 시절의 고은 시인은 어떤 `괴기한 기(氣)'를 느끼게 한다.
이밖에도 책에는 손창섭 정비석 김규동 김종문 송지영 박인환 조지훈 황명걸 이어령 등 숱한 시인묵객들의 얼굴이 보인다.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단신남하, 당시 힘겨운 문학청년 생활을 하던 저자의 회고담도 읽을거리.
이호철씨는 "앞으로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그리고 힘이 닿는다면 2000년대까지 이런 문단 이면사를 한권씩 쓰고 싶다"고 희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