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전란 (40)
기사입력 1997년 06월 10일 14시 24분
"불화살을 쏘아라！"
배중손이 소리치자 뱃머리에 장착된 대궁에서 불화살 두개가 하늘로 솟구쳐 날아갔다.
목표는 이백보쯤 앞에서 도망치고 있는 삼층 누각의 대선이다.
"맞았다！"
수군 서너명이 함성을 질렀고 화살 한개가 이층 누각에 박혀 불꽃이 튀었다.
하늘은 맑았지만 바람이 세어서 잔뜩 돛을 부풀린 양쪽 배는 속력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쪽은 화물이 없는데다가 배 바닥에 날을 댄 쾌선이다.
거리가 백보쯤으로 좁혀졌고 불을 끄려고 이리저리 뛰는 저쪽 사내들이 보였다. 남송의 무역선이었다.
"오백석은 실히 실을수 있는 배입니다."
옆에 선 교위가 말했다.
"저놈들도 우리가 해적선인줄 아는 모양이오."
"차라리 덮쳐서 뺏는 게 쉬운 일이다."
배중손이 뱉듯이 말했다. 이미 반나절이나 쫓아왔으니 망망대해의 한복판이다. 아마 오덕도보다 대마도가 더 가까울 것이다.
거리가 오십보쯤으로 좁혀졌을때 한어를 아는 수군 한명이 두손바닥으로 입 주위를 감고는 소리쳤다.
"멈춰라！ 우리는 고려 수군이다！"
이쪽은 이미 갑판 옆에 궁사들이 화살을 잰 활을 저쪽에 겨누고 있었는데 저쪽도 마찬가지였다. 서너명이 활을 겨누고 있다.
"멈추지 않으면 모두 죽인다！"
"우리는 무역선이오！"
저쪽의 누군가가 소리쳤다.
"고려수군이 왜 우리를 공격합니까?"
"멈춰라！ 할말이 있다！"
삼층 대선에 삼사십명 가까운 사람들이 보였지만 이쪽은 완전무장한 이십여명의 수군이니 당할수는 없다.
이윽고 무역선의 돛이 내려지고 겁에 질린 한인들의 얼굴도 똑똑히 보였다.
갈퀴로 뱃전을 잡아당겨 삼줄로 묶은 다음 배중손은 군사들과 함께 무역선으로 뛰어 건넜다.
닷새동안 이것으로 일곱척째 잡은 셈이다.
"누가 선주인가?"
배중손이 소리쳐 묻자 옆에 선 군사가 더 큰 목소리로 통역을 했다.
"내가 선주올시다."
이쪽의 관복을 보고 조금 마음을 놓았는지 사십대의 비대한 사내가 사람들을 헤치고 나섰다.
비단옷을 입고 콧수염이 잘 다듬어졌다.
"어디로 가는가?"
"일본으로 가는 중이외다."
이제는"일본에 못간다. 짐은 모두 고려국에다 풀고 장사를 해라."
"아니 도대체 그것이 무슨 말이오?"
모두가 같은 질문이고 같은 표정이다.
배중손이 입맛을 다셨다. 그저 모두 죽이고 배에 가득차있는 비단과 구슬, 온갖 재화를 강탈한다면 평생을 호의호식 할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통로가 끊기고 오덕도의 무역기지 건설이 불가능해진다.
잠자코 선 배중손 대신 군사가 눈을 부라리며 설명을 했다.
왜선도 오덕도에 모이도록 되었다고 하자 선주는 조금 이해하는것 같이 보였지만 아직도 불만이 있다.
배중손이 소리쳤다.
"자. 오덕도로 간다."
이렇게 한척 두척을 모아 오덕도로 보내고 익숙해진 다음에는 몰래 빠져나가는 배를 잡아 아예 몰살을 시키는 것이다.
두척의 배는 선수를 틀어 다시 대해를 항해하기 시작했다.
"별장어른, 배에 여자도 있소이다."
교위가 눈을 빛내며 말했지만 배중손은 못들은척 했다.
이쪽은 해적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