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전란 (39)

기사입력 1997년 06월 09일 14시 07분


쓴웃음을 지은 윤의충이 머리를 저었다.

"소직이 아씨를 벨리가 있습니까? 아씨는 시중대감의 따님이시오."

"이재만과 혼인은 못해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윤의충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대감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시면 안됩니다. 아씨는 너무 경솔하셨소."

"아버지께 다 말씀 드렸어요. 당신께 몸도 주었다고."

"…."

"알고 계시더군요. 도처에 밀정이 깔려 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김영이 머리를 숙였다.

"난 대업도 모르고 시중대감의 딸노릇도 다 싫어요. 오직 당신 곁에만 있고 싶어요."

"정말 철없는 사람이로군."

길게 숨을 뱉은 윤의충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미 왕의 밀정은 당신의 가출을 보고했을 겁니다. 이재만의 아비 이도명은 영향력이 큰 사람으로 대감께 큰 힘이 되어줄 터인데."

"강화를 떠나기전 이재만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혼인 못하니 그렇게 알라고."

"허어."

윤의충이 장탄식을 했다. 이미 깨진 그릇인 것이다. 그것을 아직 김준은 모르고 있을테니 더욱 야단이다.

"이렇게 경솔할 수가."

"그길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머리를 든 김영이 윤의충을 바라보았다.

"마굿간에서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마음에 두었습니다. 날 거두어 주세요."

"밤이 깊었소."

윤의충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도 성치 않으신데 너무 오래 앉아 있었소이다."

"날 보내면 죽겠어요."

눈을 크게 뜬 김영이 그를 올려다 보았다.

"따뜻한 말은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날 보내지는 마세요."

윤의충은 그녀의 두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았다. 굳게 입을 다문채 눈도 깜박이지 않았으나 눈물은 쉴새없이 흘러내린다.

다음날 아침 교위 황방이 윤의충의 밀지를 품고 강화로 뛰었다. 그와 엇갈리듯이 강화에서 파발이 도착했는데 김준이 보낸 밀사였다.

막 오덕도로 가려던 윤의충이 말에 앉아 밀지를 읽었다. 부사 김기천이 말에 탄채 그의 옆에 서 있었다.

"장군, 무슨 일입니까?"

밀지를 접어 품속에 넣은 윤의충에게 그가 물었다. 그는 힐끗 관저의 본채에 시선을 주었다.

"아씨 때문입니까?"

그도 김영이 어젯밤에 도착한것을 안다. 윤의충이 머리를 저었다.

"몽골사신 흑적과 은홍이 이곳에 온다는거요."

"아니 이곳엔 왜."

"내가 양병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것 같소. 그것을 확인하겠다는 거요."

김기천의 안색이 변했다.

"장군, 큰일이 났소이다. 이제 막 기틀이 잡혀가는 중인데."

윤의충이 말고삐를 채어 관저를 나오자 김기천이 옆으로 바짝 다가 붙었다.

"장군, 대감께서 대책을 알려 주셨소이까?"

"아니, 나에게 맡긴다고 하셨소."

"그렇다면."

"흑적과 은홍은 개경에 주둔한 왕창국의 기마군 이천을 모두 끌고 올거요. 그리고 대장군 안석보의 별초군 일천과 함께."

윤의충이 김기천을 향해 웃었다.

"이것이 아마 나에게 첫 시련이 되겠소. 진주목의 방어사로서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