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정직하게 살기위해 그림 그립니다'
기사입력 1997년 06월 08일 14시 37분
범죄 피의자들로 북적거리는 살벌한（?） 경찰서 안에서 물감냄새가 물씬 풍긴다.
`경찰관 화가' 안진우 경위（59·부산 북부경찰서 조사계 주임）.
각종 고소－고발사건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조사계 사무실에 어둠이 밀려들기 시작하면 안 경위는 화구를 펼쳐놓고 창작 삼매경에 빠져든다.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강력범죄를 다루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인정보다는 법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짬짬이 시간을 내 그림을 그리다보면 경직된 사고가 유연해지고 스트레스도 말끔하게 풀리죠."
그의 그림 경력은 올해로 17년째.
그동안 누드나 풍경, 정물 등 약 50점의 유화를 그렸으나 직장 동료 등에게 거의 다 나눠주고 현재 남은 것은 10여점. 비록 낙선을 했지만 지난 89년에는 한국미술대전에 출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작업 탓에 지난 95년에는 작업중 실신해 수술까지 받았다. 녹내장이었다.
그 이후 가족들은 그의 작업실에 있는 화구를 모두 치웠다. 그는 발동하는 `끼'를 도저히 억제할 수 없어 화구를 사무실에 갖다 놓고 가족들 몰래 붓을 잡았을 정도.
그가 본격적으로 그림 그리기에 나선 것은 지난 80년초.
"고시에 4번 낙방하고 66년 경찰에 뛰어들 때만 해도 경찰 생활은 3년만 할 생각이었습니다. 우연히 한 사건을 접하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그림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느꼈습니다."
고학을 하면서 배급 밀가루 포장지에 그림을 그려 내다 팔 만큼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단다.
경찰생활 대부분을 경제사건 수사에 매달려온 그는 이 분야의 베테랑. 지난 90년 축협 수입 쇠고기를 한우로 둔갑해 수백억원의 폭리를 취한 파렴치범들을 일망타진하기도 했다.
그는 내년까지 열심히 작품활동을 해 30여점 정도로 개인 전시회를 가질 예정.
"그림그리는 작업은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도화지 위에 옮기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살기 위해 그림그리기를 시작했듯이 경찰생활을 그만두더라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릴 것입니다."
그는 20여년째 불우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온 숨은 선행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