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전란 (38)

기사입력 1997년 06월 08일 14시 37분


만척이 가마에 태운 김영과 함께 진주성에 도착한것은 그로부터 사흘 후였다.

동경성에서 윤의충이 보낸 군사들과 합류한 그들 일행은 깊은 밤이 되어서야 방호사 관저에 들어섰다.

쇠약해진 김영이 강화섬까지 먼길을 다시 되짚어 갈 형편이 못되었던 것이다. 또한 김영이 진주행을 고집했기 때문에 어쩔수가 없었다.

부축을 받아 내실에 들어선 김영은 보료에 앉혀졌다. 이미 여복으로 갈아입은 데다가 오는 도중 역사에서 몸단장도 한터여서 예전의 미모가 되살아났다.

관저안은 조금 술렁이고 있었다. 군사가 이리저리 뛰었고 하인들이 둘, 셋씩 모여 있다.

윤의충이 관저의 대문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만척이 달려왔다. 반가움에 가득찬 얼굴이다.

"장군, 만척이 문안이오."

앞에 멈춰선 그가 허리를 꺾었다가 폈다. 눈에는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다.

"장군, 뵙고 싶었소이다."

윤의충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는 지금 오덕도에서 오는 길이다.

"왜 곧장 강화로 가지 않았느냐?"

"아씨 몸이 편치 않으시오. 도중에 쉬실곳도 마땅치 않았소이다."

한걸음 다가선 만척이 그를 올려다 보았다. 윤의충의 찌푸린 표정에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장군, 교위 황방을 만나 들었소이다. 허나 도중에 돌려 보내신다는 것은 무심하신 처사시오."

"별장이 되더니만 제법 말이 길어졌구나."

만척이 벌쭉 웃었다.

"목숨을 드릴분 한테는 할 말을 하지요."

그들은 청으로 올라가 마주앉았다. 만척이 목소리를 낮췄다.

"장군, 성내의 군기가 엄하고 군사들의 눈이 살아 있습니다. 강화의 별초군보다 낫소이다."

"잘 먹인다. 이틀에 한번은 고기도 먹이느니."

이제 윤의충의 기색도 풀어졌다. 만척은 그의 심복중의 심복인 것이다.

만척이 십여년 연상이었으나 충심으로 심복하고 있다는 것이 온몸으로 풍겨나왔다.

"정병 이천오백이다. 기마군이 오백이야."

윤의충도 목소리를 낮췄다.

"오덕도를 해상기지겸 무역항으로 만들 작정이다. 이미 주민 이천여명이 이주해 왔고 곧 3,4만이 모인다."

"소직도 이곳에서 장군을 돕고 싶소이다."

"넌 대감을 모셔라. 그래야 내가 마음이 놓인다."

"왕이 무능하여 몽골놈들의 손아귀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만척이 시선을 들었다가 입을 닫았다.

그의 시선 끝을 본 윤의충이 머리를 돌렸다. 뒤쪽에서 김영이 다가오고 있었다.

등빛을 받은 그녀의 얼굴은 조금 여위었으나 아름다웠다. 그녀가 윤의충의 옆쪽에 다소곳한 자세로 앉았다.

"장군께 폐를 끼칩니다."

만척이 옷자락을 펄럭이며 일어섰다.

"장군, 군사들을 쉬게 해야겠소이다."

시선도 주지 않은채 바쁘게 몸을 돌린 그가 청을 나갔으므로 둘만이 남았다. 김영이 시선을 들었다. 굳어진 표정이다.

"제가 대업을 망쳤나요?"

"…."

"아버지는 저를 베신다고 하셨는데, 장군께 저는 부스럼같은 존재일 뿐이라고."

침을 모아 삼킨 김영이 말을 이었다.

"차라리 당신 손에 죽고 싶어서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