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고치] 학교반입 금지조치후 '집단 학살'
기사입력 1997년 06월 05일 15시 03분
서울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
이 학교 4학년 2반에는 전체 56명 중 `전과자'들의 숫자가 반이 넘는다.
이 가운데는 초범이 가장 많지만 2∼3범도 10명이 넘고 개중에는 전과 5범짜리 학생도 있다.
죄목은 `애완동물 살해죄.'
`다마고치 살해범'이 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서초구의 S중학교와 송파구의 P고교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초－중－고교 학생들에게 사이버 애완동물인 다마고치 휴대를 금지시키자 애지중지 키우던 다마고치를 `집단 학살'하고 있는 것.
심지어는 1인당 3∼4개의 다마고치를 모아놓고 누가 더 빨리 죽이는가 내기를 벌이는가 하면 죽인 숫자에 따라 서로에게 전과 2범이니 3범이니 하는 별명을 붙이기도 한다.
다마고치 붐이 하루아침에 `학살 열풍'으로 바뀌게 된 것은 정부가 다마고치 휴대 금지령을 내린 직후부터.
다마고치는 평균 1시간에 1∼2번씩 같이 놀아주거나 밥을 줘야 하는데 학교에 갖고 다닐 수 없게 되자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며 안락사 시키거나 일부러 괴롭혀 `가출'하게 만든다는 것.
다마고치 학살은 비단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다마고치의 원조격인 일본의 경우 잘 키울 자신이 없거나 다마고치가 너무 흔해지자 더이상 흥미를 못 느낀 학생들이 집단 학살을 자행,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연세대 아동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의 김송이양（26）은 "정부의 교내 반입금지령 이후 학생들은 다마고치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함께 공부에 방해된다는 생각을 한 나머지 일부러 죽이는 것 같다"며 "학생들은 다마고치를 살아있는 생물과 동일시 하기 때문에 자칫 생명경시 풍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외동딸을 키우고 있다는 주부 문이주씨（44．서울 서초구 반포2동）는 "형제도 없고 아파트에 살아 애완동물을 키울 수 없는 환경이 안타까워 다마고치를 사줬더니 며칠전 딸애가 `공부에 방해된다'고 일부러 안락사 시켰다"며 "정서발달은 커녕 잔인성을 키워준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ＰＣ통신 천리안 `다마고치에 대하여'란 토론방에는 `다마고치 후유증'을 호소하는 글들로 빼곡하다.
`학생들이 전과자로 변하고 있다'（WINE39A）, `맘에 안든다고 콱 죽여 버린다더라'（PERSUADE） 등 고발내용도 가지가지.
그러나 살아있는 동물을 키울 형편이 못돼 선택한 가상동물마저 학업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안락사 시키는 요즘 학생들이 가엾고 불쌍하다는데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