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질투의 화신 (1)
기사입력 1997년 06월 04일 13시 43분
돈 3천만원 때문에 오빠로부터 도둑년 취급받고 괄시받던 일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지만 그래도 그 때문에 허원행을 만났다.
`비젼21' 잡지사를 찾아가면서도 그녀의 머리는 자신의 장래 문제로 꽉 차 있었다.
`돈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내 과거나 허원행 과거나 깨끗하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왜일까? 언제부터일까? 출세를 위해 이리 저리 몸을 굴렸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는 허원행 뿐이다. `어떻게든 움켜 쥐어야지.'
끽-.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잡자 금속성 소리를 내며 멈추어 섰다.
잡지사 현관으로 허원행이 나오는데 옆에 입사한지 보름도 안된 여기자가 허원행 옆에 찰싹 달라붙어 따라 나오고 있다.
장혜정의 눈에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저 애송이가 벌써… 어디. 따라가 보자.'
차를 돌렸다. 그리고 백미러로 이들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허원행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신입사원 여기자 이종민을 바라보았다.
"어디로 모실까."
"어디든 좋아요. 맥주가 있고 대화 나눌 장소만 있다면."
아주 쾌활해 보였다. 다른 여기자들은 허원행 앞에서 제대로 말도 못한다. 하지만 이 아가씨는 허원행이 사장인지 친구인지도 의식하지 않는듯 했다.
"학교 다닐때 운동권이었나?"
"그런거 관심 없었어요. 왜요?"
"그냥. 그렇게 보여서."
"제가 너무 털털해서 그렇죠? 저 원래 이래요. 하지만 사고방식 하나는 똑부러지죠."
이들을 태운 승용차는 강남의 한 호텔에서 멈추어섰다. `아니, 이시간에 호텔까지. 나한테는 전화 한통 없이. 어디까지 가나 끝까지 따라가자.' 장혜정은 눈이 뒤집혀 있었다. 그리고 차를 세우고 멀리서 미행하기 시작했다.
"여긴 너무 비싸잖아요."
이종민이 불안한 얼굴로 허원행을 바라보았다.
"걱정마. 오늘은 소장님이 신입기자를 위해 한턱 쓰는 날이니까. 그대신 이기자 의견 서슴없이 털어놔야돼. 알았지."
불황여파 때문인지 호텔 바는 빈자리가 많았다. 음악이 흐르기는 하지만 대화 나누기에는 더 없이 좋았다. 맥주가 날아오고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까 들으니까 김대중, 김종필, 박태준 연합을 말하는거 같던데."
"네. 그랬죠. 쉽게 말해 DJP에서 DJT. 대중, 태준, 종필 연합."
"너무 이상(理想)아닐까?"
"제가 한번 쓰려고 해요. 물론 비약적이거나 지나친 상상일지는 몰라도."
허원행이 웃으며 이종민을 바라보았다.